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 마중나온 당직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간의 청와대 관저생활을 청산하고 28년 만에 삼성동 자택을 찾게 됐다. 이곳은 박 전 대통령이 장충동 집을 떠난 후부터 지난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 은둔 생활을 했던 곳이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지난 1998년에 대구 달성군의 아파트로 이사한 기록이 있지만 국회의원 지역구 때문에 서류상으로만 전거 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이 삼성동 자택에서 처음 살았던 거주자는 아니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삼성동 자택은 지난 1982년 준공 허가가 났고, 다음해에 김 아무개 씨가 거주했다. 이후 김 씨는 지난 1990년에 이 집을 팔았는데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두 번째로 거주하게 된다. 이 집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3층으로 구성돼 있고 전체 연면적은 317.35㎡이다. 오래전에 건축된 관계로 도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동 자택 역시 최순실 일가와 얽혀 있었다. 특검 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 씨의 모친인 임선이 씨가 삼성동 42-6 건물 및 주택의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집은 시가 10억 원으로 평가되며, 임 씨는 지난 1990년 6월부터 7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0억 5000만 원을 지급했다. 또 당시 삼성동 자택 인근에 최태민 씨의 집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도보 200m 거리에 최순득 씨의 남편인 장 아무개 씨의 소유의 건물이 있었다.
탄핵 인용이 결정된 지난 10일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은 개보수 작업이 한창 진행됐다. 이날 오후 네 시께부터 실내 인테리어 업체 차량으로 추정되는 승용차가 자택을 드나들었다. 이후 침대, 화장대 등을 실은 청와대 차량이 자택에 도착해 이삿짐을 날랐다. 같은 날 KT 관계자들이 올레TV 셋톱박스 및 전화선 등 통신장비를 갖고 자택에 출입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도 TV를 즐겨 봤다는 보도가 이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까지 LG전자 대형 TV를 포함해 냉장고 두 대와 김치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 자택으로 이동됐다.
이후 삼성동 자택 앞은 취재진과 경찰 인력,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단체들로 붐볐다. 박 전 대통령이 퇴거할 때부터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수백 명이 자택 앞까지 동행해 “대통령님이 힘을 내셔야 한다”고 외치며 밤을 지새웠다. 박 전 대통령은 일주일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측근 일부가 자택을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친박계인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택을 나와 “박 전 대통령 몸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자택 생활을 전했다.
17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에서 나온 이영선 대통령경호실 경호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정치인 이외에도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과 청와대 직원들도 모습을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를 돕고 차명 휴대전화를 개통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 상태인 이영선 행정관과, 윤전추 행정관 등이 수일 동안 자택을 드나들었다. 또 청와대에서부터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담당한 정송주 토니앤가이 원장도 동생과 함께 아침 일찍 자택에 들어가 박 대통령의 외출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수시간 이후 자택 밖으로 나온 건 정송주 자매뿐이었다. 대통령직을 파면당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외모 가꾸기에 신경 쓴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최순실 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소개해 준 이들이 탄핵 이후에도 자택을 오가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에 변화가 없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도 자택에 들렀다. 박 전 대통령이 오는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것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측에 21일 오전 9시30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이에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요구한 일시에 출석하여 성실하게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변호인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 필요한 자료 제출 등 제반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이 신속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저 앞 취재진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오는 21일 박 전 대통령이 집 밖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돼 이날 인파가 다시 몰릴 것으로 보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할아버지들 고함소리 괴로워요ㅠㅠ” 몸살 앓는 초등학생들과 이웃 주민들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인근에서는 경찰의 경계 근무와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의 집회, 대기하고 있는 취재진 등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찍지 마세요. 우리 장난으로 있는 것 아닙니다.” 지난 16일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앞을 지나다니는 시민들 여럿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었다. 집회 모습을 휴대폰으로 몰래 찍었다는 이유였다. 이들 중에는 실제로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 있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사저 바로 옆에는 삼릉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어 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할아버지 고함소리가 들린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지난 15일 학교 측에서는 경찰에 시설안전보호요청 공문을 발송했고, 강남서초교육지원청도 경찰에 “삼릉초 학생들의 등하굣길 안전이 우려된다”며 학교 주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집회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집회 강제 해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경찰은 이후 “집회 관리를 더 엄정히 하고 소음 관리 규정도 보수적으로 적용할 것”이라며 “필요하면 집회 금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