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태블릿 컴퓨터는 갤럭시 노트 프로 12.2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2014년 1월부터 이 제품을 출고가 88만 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출시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최초의 12.2인치 화면 태블릿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처음 문제가 비화된 건 지난 2014년 중순쯤이었다. 한 구매자는 “배터리가 절반 정도 사용되면 화면이 깜빡이기 시작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구매자에 따르면 이 제품은 이따금 충전기를 꽂아도 충전이 되지 않기까지 했다고 한다. 평범한 애플리케이션 구동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가끔 깜빡이던 화면은 동영상 등을 재생하면 깜빡임 증상이 심해졌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프로 12.2 제품이 자체 결함 임에도 보증기간이 지난 고객에는 수리비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구매자는 2014년 11월쯤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서비스 센터 담당자는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메인 보드와 배터리를 교환해 줬다. 하지만 몇 달 뒤 또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구매자는 지난 2015년 2월 다시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이때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커넥터 문제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매자는 “담당자가 ‘삼성전자 본사에서 이 문제를 알고 있다. 이 제품의 경우 배터리와 메인 보드 사이에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커넥터가 제 역할을 못해서 전압이 불안정해진다. 그 때문에 순간순간 전압이 올라갔다 내려가서 화면이 꺼졌다 켜지는 상황’이라더라”고 전했다. 납땜 조치를 한 뒤 이 현상은 사라졌다.
외국에서도 화면 깜빡임(Screen Flicker) 문제가 다수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곧장 구체적인 대응에 나섰다. 납땜 처리를 멈추고 개선품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기부터 삼성전자는 깜빡임 문제가 발생한 구매자를 대상으로 부품 교체와 환불 조치를 해줬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이런 조치를 보증기간이 남은 고객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보증 기간 이후에 깜빡임 현상 때문에 찾아온 고객에게 결함 부품 교체 수리비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자체 결함이면 보증기간에 상관 없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2014년쯤 이 제품을 구입해 2015년부터 간헐적인 깜빡임 문제에 맞닥뜨렸던 박 아무개 씨(39)는 올해 들어 깜빡임이 부쩍 심해진 것을 느꼈다. 특히 깜빡임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늘 실행하고 있던 애플리케이션이 한꺼번에 꺼졌다. 동영상을 재생하면 아예 번쩍번쩍 할 정도로 화면이 계속 꺼졌다 켜졌다. 터치도 작동 안 됐다.
갤럭시 노트 프로 12.2는 이 ‘주의’ 화면이 뜨면 심하게 깜빡이는 결함이 드러난다.
박 씨는 지난달 24일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문제 제품을 받아 든 담당자는 얼마 뒤 박 씨에게 그래프 하나를 내밀었다. 박 씨의 태블릿 컴퓨터 전압 시험 결과였다. 배터리 잔량이 특정 구간 이하로 떨어지면 그래프는 들쭉날쭉해졌다. 전압에 따라 화면이 꺼졌다 켜졌다 했던 것이다. 담당자는 배터리 쪽 문제라고 답하며 교체를 권했다.
자신보다 먼저 깜빡임 문제를 맞닥뜨렸던 구매자가 납땜 조치 뒤 괜찮아졌다는 걸 알았던 박 씨는 담당자에게 납땜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담당자는 거절했다. 담당자는 “2015년 중반 삼성전자 본사에서 공식적으로 납땜 처리 하지 말고 개선된 배터리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개선된 배터리 가격은 8만 원쯤이었다.
박 씨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개선품이라면 자체 결함을 인정한 셈인데 그렇다면 기간에 상관 없이 수리해주거나 교체해주는 게 맞기 때문이다. 박 씨는 “삼성전자 본사에서 서비스 센터에 ‘개선된 배터리로 교체해 줄 것’을 지시했다면 스스로 자체 결함을 인정한 셈이다. 이런 경우 리콜을 해서 이 제품을 구매한 모든 사람이 제품 결함을 수리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옳다. 보증기간이 지났다고 개선품을 돈 주고 구입해 결함 부품을 교체하라는 건 자체 결함 문제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삼성전자 본사로 전화했다. 제품 자체 결함인데 왜 돈을 내고 수리 받아야 하냐고 따졌다. 삼성전자는 서비스 센터를 거쳐 박 씨에게 “정 그렇다면 7%를 할인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박 씨는 거절했다. 박 씨는 재차 “결함을 인정하고 구매자가 개선된 제품을 교체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갤럭시 노트 7과 더불어 태블릿 컴퓨터에서도 자체 결함이 발견되며 삼성의 품질 신화가 꺼지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사후 서비스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한 소비자는 “삼성 제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의 완성도와 철저한 사후 서비스 때문이다. 나는 삼성전자 제품을 ‘튼튼하다’고 생각하며 설령 문제가 발생해도 재빨리 고쳐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구매한다”면서도 “그런데 이제 튼튼한지도 잘 모르겠다. 문제가 발생해도 재빨리 해결해주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이건희 전 회장이 현업에 있을 땐 결함 제품을 다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삼성전자가 예전만 못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95년 당시 리콜했던 제품 500억 원 어치를 모두 소각했다. 제대로 만들라는 의미에서였다. ‘애니콜 화형식’ 뒤로 삼성전자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2015년 이 문제가 정식 보고된 바 있다. 다만 문제가 모든 제품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지 않았기에 갤럭시 노트 7처럼 리콜 처리를 따로 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리콜이나 보증 기간 이후 무상 수리 및 교체, 환불해주라는 지침이 없다. 보증 기간이 끝났다면 서비스 센터의 판단으로 유무상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