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필리핀 세부에서 발생한 ‘한국인 성매매 관광객 적발’ 사건이 필리핀 수사 당국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이와 관련한 상반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초반에는 “애초에 성매매를 하러 간 한국인들이 나빴다”는 의견이 득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필리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가 조금씩 가세하면서 “한국인을 타깃으로 한 셋업 수사가 아니냐”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필리핀 수사당국이 명백한 수사 증거를 한국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또한 보석금을 내고 귀국한 한국인들에 대해 “한국 대사관이 범죄자들을 도피시켰다”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필리핀의 언론이 그 의혹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필리핀 성매매 관광 한국인 9명의 체포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일요신문>은 ‘한국인 성매매 관광객 적발’ 사건을 취재하면서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필리핀 교민 A 씨라고 밝힌 제보자는 “이번 사건에 필리핀 정부가 깊게 개입한 듯한 의심이 든다”라고 운을 띄웠다. 불시 단속부터 수사, 기소에 이르기까지 필리핀 수사 당국과 이민국(NBI)이 보여준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허술했고, 일부 죄목은 사실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덧붙여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A 씨의 말이다.
“성매매는 범죄 맞죠, 한국인들이 잘못한 것도 맞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부인하자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수사 과정이 너무 수상하단 말입니다. 붙잡혔던 한국인들에게 누가 성매매를 알선했는지, 뭘 통해서 들어왔는지 이런 게 제대로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거기다가 실체조차 불분명한 성매매 카르텔이라는 걸 들이밀고 한국 교민이면 아무나 잡아들일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건 한국에 대한 국가적 모욕인 동시에 한국 교민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에요.”
당시 한국에도 보도된 내용은 9명의 한국인들이 세부의 한 호텔에서 19~21세의 필리핀 여성들과 성매매를 하려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NBI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됐다는 것이다. 이들의 실명은 필리핀 언론을 통해 모두 공개됐고, 심지어 검거 장면까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이들은 충남 보령 지역 공기업 직원, 식당 사장, 식품제조업체 대표 등으로 초등학교 선후배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필리핀 현지 언론은 NBI 수사관 공식 수사 브리핑 자료 등을 통해 이들이 “필리핀 현지 교민이 리더로 있는 성매매 카르텔과 성매매 관광 패키지 판매 웹사이트를 이용해 1인당 25만 페소(한화 약 574만 원)를 내고 성매매 관광 패키지를 신청해 필리핀에 입국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NBI는 이 웹사이트를 상당 기간 동안 감시하고 있다가 이번에 적발된 9명이 관광 패키지를 결제하고 입국하는 것을 노려 이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당시 NBI 수사관 측은 이 웹사이트에 대해 “한국인들만 접속할 수 있는 폐쇄적인 사이트로 접근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실제로 자신들이 웹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필리핀 성매매 관광 패키지를 홍보하는 한 웹사이트의 화면 캡처
그런데 현재까지 NBI 측은 한국 수사기관에 이 웹사이트의 화면 캡처나 웹사이트 주소 등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웹사이트의 존재와 접속 방법, 현지 교민이 제공하는 필리핀 여성의 성매매 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현지 언론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누락된 것. 실제로 필리핀 수사당국으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았던 충남지방경찰청이나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역시 이 웹사이트와 관련한 자료는 일절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필리핀 수사당국이 이 사건의 혐의를 확대 적용해 수사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초기에 NBI는 9명의 한국인 관광객 가운데 현장에서 필리핀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적발된 7명에 대해서는 성매매 혐의를 적용시켰다. 그런데 현재 보호 중인 성매매 여성들이 인신매매로 인해 성매매를 강요당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들에게 인신매매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까지 주장했다. 더욱이 단순한 인신매매가 아니라 3명 이상이 범죄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조직적인 인신매매 혐의다.
특히 이 혐의는 당시 체포됐던 한국인 관광객 외에 성매매 카르텔 조직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앤디(Andy)’ ‘초이(Choi)’ ‘킴(Kim)’ 3명의 필리핀 교민에게 더욱 중대하게 적용된다. 단순 성매매가 현지법으로 최장 12년의 형이 선고되는 데 반해 조직적인 인신매매를 통한 성매매 사실이 인정될 경우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NBI는 이들 세 명과 필리핀 현지인 1명이 세부 지역 내 ‘성매매 카르텔’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사건 당일 도주한 이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밝혀왔다. 이들 가운데 특히 ‘초이’라는 인물은 성매매 카르텔의 우두머리로 파악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초이’라는 인물이 그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가공의 인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혹은 존재는 하지만 성매매나 인신매매 건과 전혀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수사당국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시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필리핀 수사당국이 주장하는 이들의 성매매 관광 ‘웹사이트’가 증거로 제출되지 않는 이상, 카르텔의 존재 여부 역시 그 진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세부분관 이용상 경찰영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를 통해 “이미 귀국한 9명과 그 가운데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7명도 그렇지만, 필리핀이 주장하는 성매매 카르텔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밝히는 방법이 바로 그 ‘웹사이트’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수사당국이 한국 경찰과 대사관에 제출한 수사 자료는 단지 단속을 나갔던 경찰관의 진술서와 수사 결과 보고서가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리핀은 한국과 달리 사법경찰관의 진술서가 증거로 채택되고, 허위 진술로 사건이 송치되더라도 경찰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며 “NBI는 물론이고 수사기관 자체도 명확한 증거는 제출하지 않고 ‘웹사이트를 우리가 봤다’라고 말로만 주장하면 끝이라는 게 아닌가. 이런 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경찰영사로서 개인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필리핀 당국이 제출한 수사 보고서에는 웹사이트 증거자료뿐 아니라 ‘한국인 관광객이 25만 페소를 지불하고 성매매 관광 패키지를 구입했다’는 진술조차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필리핀 한국 대사관은 필리핀 수사당국에 “웹사이트 증거 자료를 제출하면 우리 경찰이 로그 기록을 분석해 이번 사건 피의자들이 실제 결제를 한 것이 맞는지 등을 확인하겠다”고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다. 이에 대한 답변이나 자료는 아직까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