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용철 씨 부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 씨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개한 사진. 맨 왼쪽 노란색 넥타이 남성이 박용철 씨, 가운데가 박 전 대통령, 맨 오른쪽이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하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경찰 수사를 놓고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제기됐다. 우선 용수 씨의 위에서 설사약이 발견된 점이 거론됐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직전에 설사약을 먹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또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흉기에서는 용수 씨 지문이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사건 현장에서 수거된 담배꽁초에서는 제3자의 DNA가 검출되기도 했다. 숨진 두 사람의 몸에서는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졸피뎀·디아제팜과 같은 수면제 성분이 발견되었지만, 둘 다 처방받은 사실이 없었다. 가해자인 용수 씨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발견된 것도 의문부호가 달렸다.
시점도 미묘했다. 용철 씨는 박 전 대통령 제부인 신동욱 씨의 재판 증인으로 신청된 상황이었다. 신 씨는 중국에서 살해를 당할 뻔했다면서 배후에 박지만 회장이 있다고 주장하다 무고혐의로 고소당했다. 용철 씨는 살해당하기 전 육영재단 관계자에게 ‘신 총재를 죽이라고 박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 있고, 통장으로 비용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고 말했다. 신 총재가 용철 씨를 증인으로 신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용철 씨 부인인 이 씨는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되는 것을 보고 이번 정권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자녀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와도 전부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결론부터 짜 맞춰 놓고 수사를 빨리 마무리하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당시 담당 형사가 남편 휴대폰이 발견됐으니 수사가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휴대폰은 찾지 못했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통화기록이라도 공개해달라고 부탁하니 수사에 혼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개를 안 하고 있다”면서 “유가족에게도 통화기록을 공개 안하는 것이 말이 되나. 정보공개 요청을 해봤는데 거부당해서 현재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도대체 뭘 숨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씨는 두 사람이 채무문제로 갈등을 빚다 용수 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경찰 발표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남편과 용수 씨의 사이가 좋았다. 우리 집안이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해 1년에도 몇 번씩 만났다. 항상 사이가 좋았다. 원한을 가지고 죽일 만한 그런 것이 없었다. 채무에 대해서도 들은 것이 없다”면서 “채무가 있었으면 통장에 돈이 오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 경찰에선 누군가 그런 증언을 했다는데 누가 그런 증언을 했느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우리도 우리지만 용수 씨 집안은 아들이 살인자로 지목돼 정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용수 씨가 부인과도 이혼해 직계 가족이 없어 이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특히 남편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간 경찰서에 A 씨가 먼저 도착해 있었던 점이 이상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A 씨는 남편이 조폭이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니는 전문 칼잡이라고 하더라. 남편과는 사업 관계로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항상 A 씨를 조심하라고 말했다”면서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가 끝나자마자 A 씨가 저를 인근 카페로 데려가 용수 씨가 남편을 죽였다고 말하더라. 당시 수사도 시작되기 전이었는데 A 씨가 그 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나. 경찰이 사건과 표면적으로는 아무 관련이 없는 A 씨에게 연락했을 리도 없는데 유족보다 먼저 경찰서에 와 있던 것도 이상했다. 담당 형사한테 A 씨가 수상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용철 씨가 마치 조폭으로 언론에 비쳐지고 있는 상황도 억울하다고 했다. 미망인은 “우리 부부는 지난 1998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었다. 저는 약사였는데 남편은 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다. 아이들 도시락을 직접 싸줄 정도로 자상한 아빠였다. 이후 남편이 한국에 들어가 찜질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서 “육영재단 사태 때 남편이 폭력 사건에 휘말린 것은 맞다. 하지만 남편은 조폭이 아니라 당시 사태를 진두지휘했을 뿐이다. 나쁜 사람이라 살해당했다는 프레임을 짜려고 남편을 매도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사건 이후 남편에 대해 왕래가 없었던 먼 친척이었다고 했다더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것인지 측근이 그냥 선을 그으려고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서운했다”면서 “시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장조카다. 당시 장남인 박지만 회장이 밖으로 떠돌고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령 씨도 미혼이었기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 제사상을 차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가 박 전 대통령이 살았던 신당동 자택까지 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 제사상을 차려드린 적도 있다. 왕래가 없었던 사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 2006년도에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대선 경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 측에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 남편이 캠프에 참여하기도 했다”면서 “장례식 때는 이런 의혹이 보도되기 전이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나 박 회장이 안 올 이유가 없었다. 매스컴에 노출되는 게 꺼려졌다면 전화나 위로문자라도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런 연락도 없어 서운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남편이 전날 술자리에 나갔다가 다음 날 새벽 그런 일을 당했다. 딸아이가 학교에 수채화 물감을 가져가야 했는데 당시 살던 곳이 신도시라 주변에 문방구가 없었다. 술자리에 나가는 남편에게 물감을 사오라고 부탁했었다”면서 “장례식에서 어떤 사람이 남편이 술자리에서 딸 준비물이라고 사다놓은 거라면서 물감을 건네주더라. 우리 딸은 아직도 그 물감을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만큼 가정적이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보니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이 모두 다 승진하고 잘나가더라. 제가 뒤늦게 나선 것은 지금이라도 재수사가 이뤄져서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을 TV로 지켜봤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는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