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의사-환자’로 이뤄진 삼각 실손보험사기 수법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 없다.
‘1320만 원.’ 지난해 10월, 오른쪽 무릎 관절 파열 수술을 받은 A 씨가 두 달간 도수치료비 명목으로 청구한 보험금 규모다. 수술비는 27만 원이었지만 보험금은 50배 넘게 받았다. 도수치료는 맨손으로 하는 물리치료다. 정확한 치료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실손의료보험으로 보상이 가능하다. 올해 초 경찰에 적발된 그는 조사 과정에서 “무릎을 다쳐 병원을 찾다가 지인으로부터 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며 그 병원을 소개 받았다”고 말했다.
운동을 하다 십자인대가 파열됐던 B 씨는 입원 첫날 화장실에서 전단지 한 장을 발견했다. ‘비싼 보험료, 내기만 하지 말고 제대로 돌려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몇 해 전 가입했던 실손보험으로 병원비를 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그는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상담실장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B 씨가 가입한 실손보험 상품에 대해 묻더니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했다. 남성은 “상품에 포함된 보험 중에 활용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 수수료 50%를 내면 진단서를 새로 만들어 주겠다. 병원비는 물론이고 10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진단서 쓰는 의사 수수료 25만 원은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대신 아무 탈 없이 확실히 챙겨주겠다”고 강조했다. 각각 400여 만 원을 챙기고 보험사 조사도 무사히 통과했던 B 씨와 남성의 공모는 허위진단서 발급 의사가 그를 석 달 동안 내사하던 경찰에 적발된 뒤에야 드러났다.
앞서의 사례는 3400여 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을 두고 벌어진 보험 사기다. 실손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시술을 받은 뒤 일반진료인 것처럼 진단서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꾸며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의 이 사기는 최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 통계를 보면, 지난 2016년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6549억 원을 기록했다. 금감원이 통계를 작성한 2001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실손보험사기 적발금액비중은 2005년 21.3%에서 2016년 52.4%로 10년 만에 두 배 넘게 뛰었다. ‘전통적인 보험사기 종목’이었던 자동차보험사기 적발금액 비중(2005년 77.6%, 2016년 44.8%)을 넘어섰다.
금감원과 경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실손보험사기가 크게 늘면서 수법이 조직화되고 있다. 장기간 입원해 보험금을 더 타내는 일명 ‘나일롱환자’나, 병원 내 상담 실장이 실손보험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부당한 치료 방법을 안내하는 방법은 이제 고전적이고 단순한 수법이다. 최근엔 앞의 A 씨와 B 씨 사례와 같이 ‘브로커-의사-가짜 환자’로 만들어진 ‘팀’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보험금을 타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 브로커가 중심
이 ‘팀’은 브로커가 중심이다. 경찰 관계자들은 전국적으로 수백 명이 넘는 브로커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소수의 가까운 지인으로 구성돼 있거나, 개인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대부분 병원 원무과 직원이나 전직 보험설계사 출신으로 보험 관련 지식이 풍부하고 의료계 인맥이 상당히 두텁다.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브로커들은 주로 노리는 것은 실손보험 상품에 종종 포함돼 있는 후유장해보험금이다. 후유장해보험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면 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다. 대부분 보상금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등 규모가 커서 브로커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높다.
수수료 비율은 난이도에 따라 다르다. 실제 장애가 발생한 환자들이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방식의 수수료는 20~50%가량이지만, 허위 작성이나 조작 등으로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할 환자가 보상금을 타게되면 70%까지 오른다.
여기에 설립기준과 규제가 느슨했던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만들어 허위 인가를 내 ‘사무장 병원’을 차리는 브로커들도 있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짜 환자 위주로 모집해 허위진단서 발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와 민간보험사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브로커들에게 협력하는 일부 병‧의원들도 있다. ‘용돈벌이’로 브로커에게 수십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허위·과잉 진단서를 써주거나 환자를 소개한 브로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식이다. 서울의 한 병원의 전직 원무과장은 “실손보험에 가입된 환자를 데려와 병원비의 10% 정도를 성과급으로 받아간다. 여기에 한 사람이 열흘 입원하면 수당을 10만~15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장기 입원 환자의 경우엔 그 환자가 쓰는 한 달치 약비용에 대한 수당이 떨어지는 방식도 있는 등, 조건은 여러 가지다”라고 말했다.
경찰과 보험사 관계자들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더라도 적발은 쉽지 않다고 털어 놓는다. 경기도의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장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의사인 내가 장염이라고 판단했는데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며 의학적 판단을 앞세우면 허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증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뒤에 확인 과정을 거친다”라고 말했다.
# 제도 보완해도 실효성 의문
실손보험사기의 규모가 매년 가파르게 늘면서, 1차적인 피해는 보험사가 보지만 일반 실손보험 가입자의 피해도 상당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2014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의 76.8%가 보험금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이 보험료만 내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2015년 10월 보험가격 자율화 조치 이후 손해율이 높은 실손보험 중심으로 보험료를 인상해왔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실손보험 개편안을 발표하고, 오는 4월 1일부터 새로운 실손보험 상품을 만든다. 그동안 과잉진료와 보험사기의 주범으로 꼽혀온 도수치료, 마늘주사 등을 특약으로 분리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실효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 상품 구조는 대폭 뜯어고쳤지만 비급여 의료제도 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 의료기관마다 제각각인 비급여 의료 항목의 금액과 기준을 표준화하지 못하면 제2의 도수치료, 제3의 마늘주사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