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편애냐’ 정부 구조조정 압박에 심기 불편
대우조선해양 전경
[일요신문]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2조 8000억 원대의 신규자금을 투입하는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년 5개월 동안 혈세만 7조 원가량이 투입되었지만,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의 결단이 예상되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15년 4조2000억 원의 자금지원을 결정하면서 추가 신규 지원을 검토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살리기 결정에 ‘밑 빠진 독의 물 붓기’란 비난과 함께 차기 정권에 혈세 폭탄 돌리기를 이어간 것이란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앞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진해운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번지며,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조기대선 정국에 새로운 갈등국면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스로 정한 원칙까지 뒤집은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논란을 들여다봤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올해 1월 실시된 삼정회계법인의 자료를 토대로 대우조선해양의 부족자금을 최소 3조 원에서 최대 5조 1000억 원대로 추정한 수치를 기준으로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5년 10월 경영정상화 추진 방안을 마련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유동성 지원 명목으로 4조 2000억 원을 지원했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이 당장 4월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마저 갚기 어려운 유동성 위기를 넘기기 위해 신규자금 등의 지원방안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이뤄내기 위함으로 채권자 모두가 동참하지 않는 등 지원 무산 시 기업회생을 전제로 법정관리 수준의 강력한 채무조정이 뒤따를 것임을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방안 발표에 재계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5년 대우조선해양에 자금지원을 결정하면서 “추가 신규지원은 없다”고 못박았던 원칙까지 스스로 깨면서까지 추가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파산한 한진해운과의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두 회사를 두고 일관성과 형평성의 문제를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경우 파산 직전까지 용선료 협상, 사채권자 집회 등을 통해 채무조정에 매달렸지만 결실을 이루지 못한 것이고,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는 이번 유동성 공급을 조건으로 채무를 줄이고, 사업별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인 다음 M&A로 가겠다는 계획이라며, 두 회사가 차이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파급여파와 정치적 셈도 복잡하다는 눈치다. 그럼에도 한진해운이 추가 자구안을 제출한 이후 마지막으로 금융당국에 부족자금 1200억 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를 외면한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조양호 회장과 대한항공의 긴급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재출연 압박만 강조한 채 정부가 손을 놓은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한진해운과 여건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도 추가지원의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도산할 경우 채권단은 최대 14조 원의 손실이 예상되며, 최대채권자인 수출입은행이 추가 충당금 적립으로 자기자본비율(BIS)이 악화될 경우 수출기업 지원이 위축돼 국내 산업 전반으로 여파가 전이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또 1300여개 협력업체 연쇄도산, 5만 여 명의 대량 실업사태 및 조선기술력 유출 가능성도 지원 이유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번 정부의 지원이 당장 급한 불만 끄는 임시방편이라는 분석과 함께 민간기업 회생을 위한 혈세 투입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여론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사업별로 생존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하는 부분을 분리해서 추가지원 혹은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며 특히,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등 정치권이 혼란한 틈을 타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넘기는 것은 오히려 다음 정부와 국민들에게 더 큰 부담과 위기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조기대선을 앞두고 대량 실업 등 경제 여파를 우려하는 논리로 혈세 투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고통스러운 구조개혁 수술 없이는 이런 일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추진방안 간담회. 사진은 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추진방안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왼쪽 두번째가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연합뉴스
일부에선 국책은행과 시중은행간의 신경전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은과 수은의 지원만으로 대우조선해양을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시중은행과 사채권자 주주 등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가 채무재조정에 동참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국책은행의 선지원으로 시중은행의 만기 연장과 출자전환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혈세 낭비와 조선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 타격이다. 심지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 업계에서조차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부의 편애를 토로하는 볼멘소리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를 의식한 정부도 채권자들 간 협의가 무산되면, 기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복합형 구조조정제도인 P플랜(Pre-Packaged Plan) 가동을 약속했다. P플랜이 가동되면 법원의 강력한 채무조정과 신속한 신규자금지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반면 P플랜이 가동될 경우 건조계약 취소 도미노 현상 발생으로 엄청난 금융비용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P플랜이 사실상 법정관리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산업부와 업계 전반에서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 대한 2개의 조선사로 집중해 국내 조선업계 난국을 타계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조에 달하는 경제 피해규모를 생각해 대우조선해양에게 마지막 회생기회를 준다는 방침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원활한 구조조정 진행 하에 2018년을 기점으로 조선업황이 소폭 개선된다면 대우조선의 재무구조는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또다시 대규모 혈세 투입이 기정사실이 되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국회 청문회 등 정치권의 강도 높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작년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일제히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국책은행의 주인은 국가이자 국민이기 때문에 국책은행 손실에 대한 국가 책임은 곧 국민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 적어도 대우조선해양이란 폭탄은 차기 정부와 국민들 손으로 돌려질 운명으로 비춰지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