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호남기업인 금호타이어를 중국업체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광주 지역사회와 정치권 등에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금호아시아나 건물. 연합뉴스
현재까지는 중국기업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 인수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채권단은 지난 13일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보유지분 42.01%와 경영권을 9550억 원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동시에 박삼구 회장에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조건(9550억원+1주)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컨소시엄을 허용해 주지 않을 경우 인수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나 채권단은 금호 측의 주장에 대해 일축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 입장이 맞설 경우 매각이 지연되거나 결국 중국업체인 더블스타에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우리나라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국의 업체가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금호타이어 매각 작업은 안갯속이다. 중국 타이어업체에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원주인’인 박삼구(사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인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선 ‘표심(票心)’을 의식한 정치권도 매각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향토기업인 금호타이어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60년 설립한 회사로, 현재 연간 6500만 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광주와 곡성에만 38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190여 개의 지역 협력업체를 두고 있을 만큼 지역 경제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금호타이어가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많은 업체와 인력이 자동차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장 하나가 문을 닫는 것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금호타이어가 해외업체에 매각될 경우 국내 투자를 점차 줄이면서 결국 ‘단순 하청기지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지역여론은 박삼구 회장 편에 서 있다. 지역 시민사회와 경제계,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호타이어 해외업체 인수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금호타이어를 중국 업체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 광주지역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13일 금호타이어 우선매수권 관련 언론 설명회에서 김세영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가 우선매수권자에게만 컨소시엄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금호타이어 우선매수권을 포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지역 경제계는 금호타이어 매각을 단순히 자본논리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채권단을 비판해왔다. 광주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채권단의 무책임한 탁상공론이 결국 지역 경제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며 “지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채권단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역의 한 경제계 인사는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되면서 현재까지 ‘한국GM 단순 하청생산기지 전락’이라는 위기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본사가 해외에 있으면 전략적으로 우리가 개발한 제품만 생산하라는 식의 단순 생산기지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업체가 향후 공장 매각 등 먹튀 사태를 초래할 경우 지역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비롯한 정치권도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향토기업인 금호타이어 상황을 바라보는 호남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며 “특혜나 ‘먹튀’ 논란은 용납할 수 없다”고 썼다. 안희정·안철수·이재명 등 후보도 ‘재입찰’이나 ‘민관합작 인수’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금호타이어의 중국 매각에 우려를 표시했다.
호남을 정치적 텃밭으로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일 금호타이어를 중국 타이어업체 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과 관련해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당은 “금호타이어 불공정 매각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는 이날 특별 성명을 통해 “군산의 현대중공업 공장폐쇄에 이어 광주·전남 토종기업인 금호타이어에 대한 불공정한 매각 추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회 정무위 등 관련 상임위를 소집해 산업은행 매각 추진과정의 불공정행위를 따지고 시정을 촉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인 손학규 후보는 고용승계 우선을, 박주선 후보는 중국 매각 반대를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인 이형석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3800명을 고용 중인 광주와 곡성 공장 폐쇄 가능성으로 지역 일자리에 악영향이 우려돼 지역경제에 타격이 될 위기”라며 “금호타이어 매각이 또다시 기술 유출과 먹튀 논란이 있던 쌍용자동차 전철을 밟지 않도록 공정한 경쟁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광주시의회도 이날 의원 일동 명의로 성명을 내고 “지역 향토기업 금호타이어의 중국매각을 반대한다”며 채권단에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시의회는 “세계적 타이어 제조업체인 금호타이어가 중국기업에 넘어간다면 광주의 산업 기반은 위태로워지고 광주·곡성공장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릴 것이며 협력업체 피해와 함께 지역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강경모드는 금호타이어가 광주와 곡성 등에 공장이 위치하는 등 호남에 뿌리를 둔 향토기업으로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선의 최대 승부처인 텃밭 민심에 대한 구애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앞서 윤장현 광주시장도 지난 18일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해 고용유지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추진해 줄 것을 채권단에 강력히 요구했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하루가 멀다 않고 호남을 찾는 대선주자들은 호남 표를 원하면서 왜 금호타이어 매각사태에 침묵하느냐”며 대선 주자들을 압박했다. 광주 시민사회단체도 “지역 경제 파급을 고려해 금호타이어 인수를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금호타이어노조 역시 중국기업에 넘어가는 것보단 박 회장 측의 인수를 내심 바라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금호타이어지회 관계자는 “노조는 어느 쪽이 인수하든 간에 고용 보장이 약속된다면 상관없다”며 “기술유출 및 지역민심을 고려할 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인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호남홀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관내에 금호타이어 사업장이 있는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산업은행은 자동차 핵심기술 중국 유출과 대량해고를 낳은 2009년 쌍용차사태를 잊었나”며 “금호타이어 매각자금으로 대우조선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지역에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