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주뿐 아니라 최근 연예계에서 제기된 성희롱 논란이 여성 연예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성별을 떠나 성희롱 등 문제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특히 연예계에서 이에 대한 확실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에는 개그우먼 이세영이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 출연한 몇몇 여자 연예인이 함께 군대생활을 하던 상사를 두고 엉덩이 등 신체 일부를 언급하는 성희롱 발언을 쏟아냈고, 그 장면은 여과 없이 방송됐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성희롱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자 제작진은 부주의한 제작 과정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도 약속했지만 비슷한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이국주 페이스북
이국주를 둘러싼 성희롱 논란은 엉뚱한 방향에서 촉발됐다. 이국주는 3월 1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악성댓글로 인신공격을 일삼는 일부 누리꾼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국주는 글에서 “(악플을) 모두 캡처하고 있다”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불쾌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악플러의 공격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끝내 ‘선전포고’를 꺼낸 셈이다.
이국주는 현재 가수 슬리피와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에 함께 출연하고 있다. 가상의 부부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은 때때로 애정 표현도 한다. 하지만 <우결> 출연 이후 이국주를 향한 악플러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이국주가 슬리피와 <우결> 촬영 도중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려 뽀뽀를 하는 장면을 두고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이에 이국주가 강경한 입장을 꺼낸 것이다.
하지만 이후 분위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단편영화 등에서 활동해온 신인 연기자 온시우가 SNS를 통해 이국주의 발언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온시우는 이국주를 겨냥해 “댓글로 조롱당하니까 기분 나쁜가요”라고 물은 뒤 “당신이 공개석상에서 성희롱한 남자들은 어땠을까요.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게 만드는 자리에서 씁쓸히 웃고 넘어갔을 그 상황. 이미 고소를 열 번도 더 당했을 일인데 부끄러운 줄 아시길”이라고 썼다. 이 내용은 삽시간에 퍼졌고, 특히 작성자가 신인 연기자라는 사실에서 논란은 증폭됐다.
문제 제기의 출발인 이국주의 악성댓글 피해는 가려지고, 그가 방송 등에서 보인 과격한 행동이 남성 연예인을 성희롱했다는 주장으로 번졌다. 이국주는 호쾌한 성격 그대로 연예계에서도 친분이 두터운 남자 스타가 여러 명이다. 과감하게 애정을 표현할 때가 있었고 이런 모습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그대로 방송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웃어넘길 수 있던 모습이지만 온시우가 작정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곧장 성희롱 논란으로 확대됐다.
이국주 측은 적지 않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혹여 입장을 내놓을 경우 논란에 기름을 부을 것을 예상한 탓인지 입을 열지 않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이국주는 논란이 한창이던 때도 SBS 파워FM <이국주의 영스트리트>를 생방송으로 진행했지만 이와 관련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누리꾼은 이국주의 과거 행동을 파헤치며 2차 공격을 시도했다. 성희롱 의혹을 제기할 만한 상황인지, 혹시 진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는지 등 여부를 신중하게 파악하고 고민하는 일 따위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는 사이 이국주를 향해 성희롱 주장을 꺼낸 온시우을 향해서도 비난의 화살이 향했다. 이국주를 ‘저격’한 이유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실제로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연기자 온시우는 이국주 성희롱 논란에 휘말리면서 연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오르내렸다.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온시우는 21일 자신의 SNS에 또 한 번 글을 썼다. “이번 논란과 관련한 여러 기사에 나와 있듯이 나는 ‘무명 배우’이자 많은 분이 말하는 것처럼 ‘듣보잡 배우’이지만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것만은 어불성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이국주가 보인 그간의 행동에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뿐이지 누군가를 공격해 역으로 이름을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기존의 입장만은 굽히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의 공개적인 ‘악플의 조롱’과 방송에서의 공개적인 ‘성적 조롱’은 모두 잘못된 것임을 느꼈고, 단지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며 “여전히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느낀 감정과 생각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밝혔다.
# 이국주보다 먼저 이세영과 <진짜 사나이> 논란
사실 성추행 혹은 성희롱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문제를 삼아야 할 예민한 부분이다. 이번 이국주의 논란처럼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특히 그 진위조차 확실치 않는 상황에서 제3의 인물이 나서서 성희롱을 주장하는 것은 숱한 오해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연예인을 둘러싸고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 게다가 대부분 방송을 통해 문제의식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이세영은 케이블채널 tvN 프로그램 <SNL코리아> 녹화에 참여한 아이돌 그룹 B1A4와 대기실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에서 일부 멤버의 주요한 부위를 잡는 듯한 동작을 취해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다. 영상이 공개된 뒤 B1A4 팬들은 이세영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사건을 수사해온 마포경찰서는 올해 1월 이세영의 고발사건을 각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이세영은 그에 따른 적지 않은 후폭풍에 시달렸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만약 이세영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추행당했다고 의심받은 B1A4가 남성 그룹이 아닌 걸그룹이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게 흘렀을 것이라는 의견을 꺼내기도 한다. 여성 연예인이 연루된 탓에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