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지난 2월 8일 신년 경영계획발표회에서 대우조선해양에 추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지난 23일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판단 문제는 죄송스러울 뿐”이라면서도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중지하면 국가적으로 피해가 59조 원에 이른다”고 해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선박 제조에 투입된 자금과 채권 등을 합치면 59조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며 “제조 중인 선박 중 2년 안에 인도할 예정인 선박이 70%가 넘어 대우조선해양이 2년 이상 유지되면 59조 원 중 27조 원 이상의 리스크는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본사 전경.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은 채권단의 주장에 의구심을 품는다.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은 1조 원 규모의 30년 만기 영구채를 발행, 이를 수출입은행이 매입했다. 만기 연장 권한은 대우조선해양에 있다.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의 대출 약 1조 8000억 원을 출자전환해 간접 지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거제대학교 산학협력단은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하면 최대 56조 원의 손실이 날 것으로 추산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작년 말 56조 원의 손실 추계를 받고 출자전환과 영구채 발행으로 땜질 처방을 했는데 거의 동액의 손실 추계가 어떻게 자금 신규 투입의 논거가 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상황을 반대로 가정해 작년 말까지 거제대의 연구 결과를 몰랐다면 정확한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영구채 발행이라는 땜질식 처방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권단은 거제대가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분석했을 뿐, 필요한 지원금을 분석한 게 아니라서 채권단 결정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거제대의 분석 결과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출자전환이나 영구채 발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했던 일”이라며 “거제대의 분석을 보고 땜질 처방을 한 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의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일부에서는 채권단이 자금만 지원하고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이 제시한 자구노력 방안의 주요 내용은 ▲경쟁력 있는 상선·특수선 중심으로 효율화하고 해양플랜트는 기존 수주잔량 인도에 집중해 사실상 정리하는 등 사업재편 가속화 ▲2018년 말까지 자회사 대부분을 조기 매각 ▲드릴쉽 등 인도지연 자산을 시장에 조기 매각 등이다.
앞서 지난해 6월, 금융위원회 등 국가기관들이 합동으로 작성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이라는 보고서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자구안으로 ▲특수선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할 후, 전략적 투자자 유치를 통해 경영권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일부 지분을 매각 ▲웰리브, 대우조선해양건설 등 14개 자회사를 모두 매각 ▲생산능력 30% 축소 등을 제시했다.
경쟁력 있는 상선 중심의 경영, 자회사 매각 등 비슷한 부분이 많아 자구안을 재탕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또 채권단은 자회사 14곳을 매각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매각된 곳은 디섹과 에프엘씨뿐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건설과 웰리브 등은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됐고 다른 자회사들도 매각 작업이 상당히 진행됐다”며 “회사에 대한 여러 비판은 이해하지만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자구안을 빠르게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하지만 국책은행의 부실은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국민들에게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향후 추가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 대우조선해양의 적자행진이 이어지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대우조선의 실적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다. 성태경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탱커선과 가스선의 경우 선박 수요의 상당 부분이 이미 발주된 상태고 컨테이너선은 선도업체들을 중심으로 신규 발주를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당분간 상선 부문의 신규 발주 규모는 기대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사진출처=대우조선해양 홈페이지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지난해 수주절벽은 클락슨 등 국제적인 기관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대우조선해양만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한 게 아니라 대부분 조선사가 목표액을 맞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초 195억 달러(약 22조 원)를 목표 수주액으로 정했으나 실제 수주액은 44억 달러(약 5조 원)에 그쳤으며 삼성중공업 역시 목표액 120억 달러(약 13조 4760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5억 2000만 달러(약 5840억 원)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이 더 위험한 까닭은 재무상황이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은 175.3%, 삼성중공업이 174.4%인 데 반해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무려 2731.6%다. 실적면에서도 현대중공업은 1조 641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으며, 삼성중공업은 147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대우조선해양보다 훨씬 나았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보유한 자산도 많고 계열사들의 지원도 있어 대우조선해양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고 항변했지만 거액의 돈을 지원한 만큼 재무구조가 회복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또 물 붓기’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정성립 사장은 올해 목표 수주액을 55억 달러(약 6조 원)로 잡았다. 지난 2월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수주액은 5억 2000만 달러(약 5830억 원)에 머물고 있다. 정 사장은 또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1년 반 만에 또 추가지원을 받게 돼 송구스럽다”며 “올해 반드시 흑자를 만들겠으며,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