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원서 접수장 난간에 매달려 마감을 하려는 청년들.
중북부 시골의 현장에서 청년들이 제게 묻는 심각한 질문입니다. 선생님, 한국에서 발표한 날짜로는 여권을 만들 수 없어요. 제가 대답합니다. 미얀마 노동부가 발표하는 게 진짜 확정날짜야. 이 나라는 여권 발급하는 데 10일 이상 걸립니다. 신분증도 접수가 된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꼭 여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일주일 뒤로 연기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접수하러 간 북부 청년들은 5일 후에야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수없는 전화가 제게 걸려왔습니다. 접수를 못할까봐 난간을 타고 들어가려다 떨어진 청년, 빨리 해주겠다고 여권과 원서대를 거둬 날치기당한 사람 등. 그래서 제가 양곤 접수처로 내려갔습니다. 중북부에선 양곤까지 8시간에서 20시간이 통상 소요됩니다. 하루는 내려가고, 하루는 원서 사고, 하루는 기다리고, 하루는 접수하고, 하루는 올라오니 5일이 걸린 겁니다. 시간은 물론이고 먹고 자고 교통비에 원서대까지 큰돈이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한 달 급여에 해당됩니다.
밀리고 밀리다 주인을 잃은 신발들.
한국 산업인력공단과 미얀마 노동부가 주관하는 EPS-TOPIK. 올해는 6000여 명을 뽑는다고 하니 5 대 1 이상의 경쟁률입니다. 양곤의 학원가는 수강생들이 그리 늘지 않고 줄어든다는데 응시하는 청년들이 폭등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재수생’이 많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 혼자 공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가장 늘어난 인원은 시골 청년들입니다. 제가 중부와 북부의 시골을 다녀봅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돌아온 청년들이 마을마다 수십 명, 수백 명을 마당에 모아놓고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발음도 표현도 한국인인 제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기테스트 공부를 제가 조금 도와주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교육을 하는 셈입니다. 미얀마 시골 청년들은 농사 이외는 정말 일자리가 없습니다. 젊은 노동자 인구가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시골마다 길거리 노천카페에 수많은 청년들이 온종일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으로 꼭 일하러 가야 할까요. 그건 주변 나라 상황 때문입니다. 북부의 친주나 카친주 사람들은 그간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로 많이 떠나 난민으로 떠돌다보니 인권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젠 이 나라도 민주정부가 들어서 유엔 난민카드를 받아도 미국 호주 등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해도 급여가 낮습니다. 일본도 물가가 비싸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한국은 급여도 안정적이고 인권이나 복지가 잘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얀마 청년들에게 ‘한국행 티켓’ 획득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보여주는 원서 접수 현장.
한국행 티켓을 따기 위해 접수를 마친 청년들이 머나먼 양곤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몰려 옆으로 밀리고 앞으로 밀리다 몸이 공중에 떠 있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신발은 어디로 가버렸고.” “우리 미얀마가 너무 가난해 이런 일을 겪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그들에겐 한국행 티켓이 너무나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한국으로 데려갈 일꾼들입니다. 이들에게 극진한 예우는 못할지라도 마음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응시원서 접수장에서 우리 한국 직원들이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배려하여 기회를 준 것도 잘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계기관 책임자들은 현실을 파악하고 앞으로 성숙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험일정 공고의 시기부터 시작됩니다. 가까운 네팔처럼 온라인 접수도 해야 합니다. 중부도시이자 교통요충지인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 접수처와 시험장을 두는 것도 이젠 고려해봐야 합니다. 접수처 게이트도 늘려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컴퓨터 시험장도 대학과 연계해 늘려서 실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안고 있는 내부사정도 있겠지만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