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의 새로운 무대는 5월 방송 예정인 KBS 2TV 예능드라마 <최고의 한방>이다. KBS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1박2일’을 지난해까지 연출한 유호진 PD와 손을 잡은 차태현은 공동 연출을 맡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도전과 앞으로 펼쳐질 결과물에 방송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동안 연출가로 나선 배우는 많았다. ‘감독’을 욕심낸 배우들의 활동 무대는 대부분 영화였다. 하정우와 유지태는 지금도 꾸준히 영화 연출을 시도하고 있고, 문소리처럼 저예산 독립영화로 실험을 거듭하는 배우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TV 프로그램, 그것도 예능과 드라마를 접목한 이색 장르의 연출을 배우가 직접 맡기는 차태현이 처음이다. 이례적인 선택이자 도전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드라마 <프로듀사>에 방송국 PD로 출연 중인 차태현. 그는 결국 현실에서도 방송국 PD가 됐다.
<최고의 한방>은 2년 전 KBS 2TV가 방송한 <프로듀사>를 잇는 예능 드라마다. <프로듀사>는 드라마 전문가가 아닌 예능 PD들이 주축이 돼 기획한 작품. <개그콘서트> 등을 책임져온 서수민 PD가 연출을 맡았고, 극본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박지은 작가가 썼다. 이에 더해 공효진, 김수현, 아이유 등 초호화 캐스팅을 앞세워 방송사 예능국 PD들의 세계를 그린 로맨스 드라마를 완성했다. 차태현 역시 <프로듀사>에 출연했다. 방송국 예능 PD역할이었다.
KBS는 2년 만에 비슷한 포맷의 드라마 <최고의 한방>을 다시 기획했고, 연출을 ‘1박2일’의 유호진 PD에게 맡겼다. 유 PD는 KBS에서 tvN으로 이적한 나영석 PD의 바통을 이어받아 ‘1박2일’의 전성기를 다시 만든 실력자로 통하는 연출자다. 때문에 예능국이 주도해 기획한 <최고의 한방>을 간판 연출자인 유 PD에게 맡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하지만 문제는 유호진 PD에게는 드라마 연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예능의 개성을 가미한 예능드라마라고 해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유호진 PD는 차태현을 떠올리고 러브콜을 보냈다. 단순히 출연해달라는 섭외 요청이 아니다. 함께 극을 이끌자는 공동 연출 제안이다.
연기 경력 22년에 접어든 차태현은 드라마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베테랑이다. 게다가 6년 동안 ‘1박2일’에 고정 출연하면서 예능에 최적화된 순발력까지 갖추고 있다. 드라마와 예능을 접목한 <최고의 한방>에 누구보다 필요한 적임자란 사실에 이견을 갖기 어려운 존재다.
유호진 PD는 차태현에 공동연출을 제안한 배경을 두고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차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즉흥적인 상황에 따라 방송 분량을 ‘뽑아내는’ 예능의 특수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적응한 사람이 차태현이라는 의미다. 유 PD는 “차태현은 프로그램 기획자인 저보다 더 잘 이해를 하고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바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이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도 말했다.
# 차태현은 커뮤니케이션과 디렉팅 담당
KBS와 유호진 PD의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지만 차태현은 연출가로 나서기까지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마음이나 각오만 앞선다고 해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PD에 뒤늦게나마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태현의 부모는 2013년 한 방송에 출연해 이와 관련한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차태현은 KBS에 근무하던 부친과 성우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방송국 PD를 희망해왔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한 뒤 부모와 상의 끝에 진로를 연기자로 변경한 차태현은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에 입학했고, 1995년 KBS 슈퍼탤런트에 입상해 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22년 동안 배우로 살아온 그가 한 분야에서 탄탄한 자리를 다진 뒤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된 셈이다.
<최고의 한방>은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겪는 일들을 그린다. 평범한 일상을 통해 이 시대 20대 청춘의 모습을 담는다는 계획 아래 연기자 윤시윤과 김민재 등이 출연을 확정했다.
곧 촬영을 앞둔 만큼 차태현과 유호진 PD는 공동 연출자로서 각자의 역할 분담도 확실히 했다. 차태현은 연기자로서 갖는 강점과 풍부한 드라마 출연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연기 지도에 집중할 계획이다. 반면 유호진 PD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편집, 조명과 카메라 등 각 분야 스태프들과의 의견 조율을 맡기로 했다.
사실 ‘궁합’이 맞지 않았다면 연예인과 예능 PD의 드라마 공동 연출은 성사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무리 서로에 필요한 존재라 해도 호흡이 맞지 않거나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공동 연출은 불가능한 일이다. 쉽지 않은 도전에 뜻을 모은 차태현은 “우리 두 사람이 모자란 부분을 합치고 최대한 교집합을 만들어 특이한 형태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시청자가 보는 내내 재미있고 끝날 때에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로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차태현은 연출을 넘어 직접 <최고의 한방>에 출연까지 한다. 극 중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 역을 맡았다. 차태현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연출로만 앉아 있는 것보다 연기를 하면서 연출하는 걸 조금 더 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며 “자연스럽게 유호진 PD와 나의 역할이 더욱 명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