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전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도시바는 뉴젠 지분 매각에 나섰다. 한전은 도시바의 뉴젠 지분을 인수하면 자연스럽게 영국 원전 사업에 진출한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8년 만에 해외 원전 사업 진출을 앞둔 것이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내에서 한전의 전력생산사업 전망은 좋지 않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포함한 발전자회사 6곳을 통해 전력을 생산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생산된 전력 9765만 킬로와트(kW) 중 한전과 한전 자회사가 생산한 전력은 7328만kW로 전체 75%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원전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한수원밖에 없지만 최근 지진 등 원전의 위험성이 대두되면서 한수원의 사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과 탈핵·에너지전환 시민사회로드맵은 대선 후보들인 문재인·안희정·이재명·최성 더불어민주당 후보, 손학규·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핵발전 정책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후보는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질의에 응한 후보들은 모두 건설 중인 원전 5곳을 백지화하거나 건설 중단 후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건설 계획 중인 6곳의 원전 역시 안희정 후보(계획 중단 후 국민여론 수렴)를 제외하면 모두 백지화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기존의 원전도 폐쇄되고 있다. 2015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을 내렸고 오는 6월부터 해체에 들어간다. 또 지난 2월 7일에는 서울행정법원 제11행정부가 월성1호기 수명연장허가 무효 판결을 내렸다.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월성1호기의 수명을 2022년까지 연장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반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원안위가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28일에는 고리4호기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해 원전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증기발생기 하단의 배수밸브 부위에서 냉각재가 새어나간 것. 냉각재가 허용치 이상으로 누설되면 냉각 기능이 떨어져 원전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이날 이후 고리4호기의 가동을 중단했으면서도 국내 원전이 안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과 같은 불시정지는 1년에 0.2~0.3회 수준인데 이 정도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석탄발전사업의 전망도 좋지 않다. 지난 3월 2일 국회는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에는 ‘전기판매사업자는 발전원별로 전력을 구매하는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경제성·환경 및 국민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전력거래소는 다음 날 전력 수요를 예측한 후 국내 여러 발전소에서 해당 전력만큼 입찰 받는다. 지금까지는 경제적 측면만 감안해 입찰했다면 이제는 환경과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법은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전기사업법이 개정됨에 따라 오염물질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액화천연가스(LNG)복합화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 석탄발전소나 위험성이 높은 원전의 가동률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LNG복합화력발전이나 신재생에너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인다. 2015년 기준 LNG복합화력을 포함한 복합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한전 및 한전 자회사가 1549만kW, 민간업체가 1302만kW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는 민간업체가 651만kW, 한전 및 한전 자회사가 90만kW를 생산해 민간업체가 오히려 많다.
업계에서 LNG발전의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만큼 한전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LNG발전은 단가가 높아 발전소 가동률이 낮은 편이었지만 가동률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그나마 최근 석탄발전은 미세먼지 배출 기준이 엄격해져 타격이 덜할 수 있지만 원전의 위험성은 여전해 원전 가동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에너지업계 다른 관계자는 “세계적인 트렌드는 신재생에너지로 가고 있지만 날씨 등 필요조건이 많아 병행할 발전소가 필요하다”며 “LNG발전은 가동시간이 짧아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며 가격도 저렴해지고 있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지난해 12월 “시장의 자율적 감시·감독 강화,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8개 에너지 공공기관을 순차적으로 상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상장 대상은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등의 5개 발전사와 한수원, 한전KDN, 한국가스기술공사다. 한국가스기술공사를 제외하면 모두 한전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기재부는 올해 한국남동발전과 한국동서발전을 상장시키고, 한국남부발전과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을 2019년까지, 나머지 기관은 2020년까지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한전 등 공공기관이나 정부의 보유 지분을 51% 이상 유지한다.
상장으로 한전 재무구조 개선에 가장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곳은 한수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사는 2016년 1~3분기 2조~3조 원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한수원의 매출은 8조 원이 넘는다. 또 한수원의 자본금은 25조 원이 넘어 3조~5조 원 수준의 다른 자회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구주 매출과 신주 발행 비율이 50%이니만큼 공모가가 높을수록 한전 재무구조에 도움이 된다.
경주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전경.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져 높은 공모가를 기대할 수만은 없다. 공모가가 낮으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실제 2003년 1월 한전 자회사인 한전기공(현 한전KPS)이 상장을 추진했으나 공모가가 낮다는 이유로 철회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전기공은 장부가보다 낮게 측정돼 상장을 철회했고, 이번에도 장부가 아래로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낮은 공모가 때문에 상장이 철회될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해당 기업의 자본, 모회사인 한전의 주가 등을 생각했을 때 내부에서는 아무리 전망이 나빠도 장부가 아래로 공모가가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수원은 최근 원전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3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월성1호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한수원도 소송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소송에는 원전 운영 허가 권한을 가진 원안위만 참여했지만 한수원도 소송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또 “현재 체코와 폴란드 등지에서 원전 수주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을 다른 나라들로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의 수익 창출이 한계가 있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 및 자회사는 국내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저렴한 전기요금이라는 공익적인 기능이 강해 대규모 수익은 해외에서 창출하는 걸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회사 상장으로 제일 큰 이익을 보는 한전은 한수원의 해외 진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7월 에미리트원자력공사(ENEC)와 6억 달러(약 6600억 원) 규모의 바라카 운영지원계약을 맺었다. ENEC는 한전이 진출한 바라카 원전의 운영회사 ‘나와’의 최대주주다. 한전이 뉴젠 지분을 인수하면 한수원도 영국 원전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 관계자는 “확정된 건 없고 도시바가 공식적으로 지분 인수를 제안하면 검토해보겠다”면서도 “한전이 영국 원전 사업에 참여하면 바라카처럼 한수원이 사업에 같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상장에 대해서는 “자회사라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의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