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초 연세대 기계공학과 ‘창의설계프로젝트’ 과목을 수강했던 공대생 김 아무개 씨(28)는 100만 원 정도 학교의 지원을 받아 무중량물 운동 기구를 발명했다. 간단한 원리였다. 중량물 없이 자신이 원하는 무게를 입력하면 그만큼의 저항이 생겨 웨이트 트레이닝이 가능한 기구였다. 평소 김 씨는 웨이트 트레이닝 할 때마다 무거운 중량물 옮기기를 귀찮아했다. 게다가 중량물을 옮길 때 발등을 찍힐 위험도 사라졌다.
김 씨가 학부생 때 만든 중량물 없이 저항 값에 따라 부하가 걸리는 운동 기구. 유튜브 캡처.
이뿐만 아니었다. 김 씨가 발명한 기구는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기능까지 탑재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조종이 가능하도록 한 것. 굳이 자신이 얼만큼 운동했는지 적지 않아도 운동 일지가 자동으로 입력됐다. 자신의 기록을 쌓아가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운동족’의 심리를 꿰뚫었던 기구였던 셈이다. 조원 5명과 함께 제작했지만 아이디어를 비롯 설계와 회로 등은 김 씨가 스스로 했다. 이름까지 붙였다. 헐크처럼 잘 크라는 의미로 Hulkro라고 이름 붙이고 브랜드 이미지까지 만들었다.
김 씨가 구현한 브랜드 로고. 유튜브 캡처.
이 수업이 종강하고 6개월쯤 지난 2014년 12월 5일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이 운동 기구 특허(10-2014-0174242)를 신청하기 이르렀다. 그런데 연세대 측은 국내 특허만 신청했다. 국제 특허는 신청하지 않았다.
NASA는 달랐다. 비슷한 원리의 운동 기구를 가지고 김 씨의 발명보다 1년쯤 뒤늦은 2015년 4월 관계사로 알려진 리씽크 모션(Rethink Motion Inc.)을 거쳐 국제 특허를 출원한 것. 지난해 4월 국제 특허를 거머쥐었다. 연세대의 국내 특허는 NASA보다 출원을 먼저하고도 늦게 등록됐다. 연세대는 지난해 6월 29일이 돼서야 국내 특허 등록을 완료한 것.
이 운동 기구에 적용되는 기술은 NASA가 수십 년을 고민해 온 분야였다. 우주 공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장기간 지내면 근육량이 줄어 지구로 돌아왔을 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탓이다. NASA도 우주 비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우주선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는 직원을 보고 싶어했다고 전해졌다. 이런 기술을 연세대는 알아보지 못했다.
연세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학부생이 국제 특허를 출원한 적이 거의 없다. 보통 연구실에서 석박사가 하는 연구 내용만 특허를 내는 편”이라며 “가끔 학부생 수업에서 발명을 내기도 하는데 기술적 특징이 명확하지 않아서 특허로 연결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해외 특허 1건당 1000만 원 이상 든다. 국내 특허에서 국제출원후보등급을 일정 점수 이상 받고 연세대 내부의 발명평가회의에서 고평가를 받아야 국제 특허 출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의 이런 반응을 두고 공대 전공자들은 어이 없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익명을 원한 공대생은 “일단 학교가 특허를 진행했다. 산학협력단 말처럼 학부생 기술이라 기술적 특징이 명확하지 않았다면 진행 자체를 안 했을 게 뻔하다. 기술적 특징이 명확했으니까 진행한 것”이라며 “게다가 특허 지분의 약 45%가 과목 담당 교수에게 돌아간다. 아이디어만 좋고 기술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이를 명확하게 해주는 게 교수와 학교의 몫이다. 지분은 그러라고 주는 것이다. 거저 주는 게 아니다. 지분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학부생이니까’라는 산학협력단의 반응 자체가 웃기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변리사는 “이 기구는 기술적 특징이 구체적인 편이다. 특허 청구할 때엔 기구의 구성이랑 구성 사이의 결합관계 정도만 쓰면 된다. 미국 특허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지금 등록 받은 건 도면에 나타난 형태의 운동기구로 한정된 것처럼 보인다. 좋은 기술 같은데 오히려 더 확장해서 받았다면 더욱 좋았을 기술”이라고 했다.
NASA는 이 기술을 우주선에만 적용하지 않고 일반 시장에 내놓을 태세다. 리씽크 모션은 이 기구에 MED-2(Miniature Exercise Device)라는 이름을 붙여 실생활에도 쓸 수 있도록 개발한 것. 오는 4월 6일부터 9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피트니스 박람회 FIBO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리씽크 모션의 대표 애런 헐스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언론에 알릴 단계는 아니지만 올 FIBO에 참가해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 라인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NASA의 관계사인 리씽크 모션이 내놓은 MED-2 운동 기구. 김 씨의 기구처럼 설정한 저항이 부하로 걸린다. 유튜브 캡처.
정부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끊임 없이 강조하고 나섰다. 대선 주자들도 입버릇처럼 정부 차원에서 폭넓게 챙겨주겠다고 연일 홍보한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 등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먹거리를 찾겠다는 의지다. 미국에 있는 헬스장만 2015년 기준 3만 6000여 개에 이른다. 거대한 운동 시장을 그냥 놓쳐버린 셈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