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조세 불평등’과 관련한 한 토론회에서 법인세 실효세율이 화두에 오르자 사회를 맡고 있던 노 교수는 청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국세청 고위 간부가 토론회를 방청하러 온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국세청 간부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한국도 법인세율과 실효세율 논란이 뜨거웠다.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다 많다, 국제 기준에 맞다 틀리다 등 한국 사회는 양쪽으로 나뉘어 격론을 벌였다.
사실 이 논란을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 노 교수의 말마따나 국세청이 전체 법인의 세금 자료를 공개하면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앞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사회적 갈등을 낮추는 한편, 연구비용과 학자들의 수고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납세 자료가 사적인 자료라며 공개를 꺼리고 있으며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에도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는 개별 기업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전체 법인세 납부액만이라도 공개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국세청의 통계 폐쇄·독점주의가 올바른 경제정책 수립과 연구 활동을 가로막는 셈이다.
통계란 어제를 읽고 올바른 내일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자료다. 올바른 결정에서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 제대로 된 통계가 없거나 연구자들이 중요한 통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 한국 경제에 진단을 내리고 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없다. 기초통계의 부족과 정부의 통계 비밀주의, 통계 작성의 오류 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온 한국 공공기관의 문제점이다.
한국 경제의 오늘을 보기 위한 통계는 수도 없이 많지만 여기에 직접 접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2007년까지 정부의 세수 균형을 공개하기 위해 전체 세수 중 간접세와 직접세 비중을 공개해 왔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작성한 회원국 통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배경으로 정부가 담뱃값 등 조세저항이 적은 물품에 대해 간접세를 늘리는 방식으로 증세를 해왔기 때문에 이를 감추고 싶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납세자연맹이 국세통계연보 등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 48.3%였던 간접세 비중은 2012년 49.7%로 대폭 증가했다.
한 세무전문가는 “한국의 세제는 일단 세율을 높게 책정하고 환급을 많이 해주는 식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세제가 복잡하고 제대로 된 세율을 측정하기 어렵다”며 “또 높은 간접세 비중이 세금 규모에 착시현상을 초래할 수 있어 조세정책 연구에 필요한 통계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각 군·구별 지역내총생산(GRDP) 통계도 확보할 수 없다. 도 단위에서는 시 단위별 통계를 공개하지만 면·읍 단위 통계는 없다. 광역시 이상의 경우도 구별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실제 각 군·구·면·읍 단위에서는 지역의 경제활동 통계를 작성한다. 하지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통계 입력 기준이 시까지로만 설정돼 있어서다. 지역경제의 현안과 지역별 편차, 주력 산업 등 개별 지역의 경제활동 통계를 찾아볼 방법이 없다.
노동 통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최근 노동개혁이 화두로 떠오르며 기업별 근로자의 평균 연령을 찾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노동부는 물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경총 등 관련 통계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조직은 없었다. 일부 사업장의 노조가 개별적으로 노조원의 평균 연령을 측정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의무공시 사항이라 야후재팬 등 포털 사이트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심지어 계장·과장·차장·부장 등 직급별 여성 인력의 비중과 승진율, 급여, 근속연수 평균 통계까지 제공한다. 물론 시계열 확인도 가능하다. 한때 일본에서도 여성 인력에 대한 차별 논란이 일자 관련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후생노동성이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미국의 경우 상무부 경제분석국(BEA)과 재무부에서 국가 재정·세입 통계를 항목별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재무부의 경우 미국의 부채 규모를 하루 단위로 공개하고, 대중이 볼 수 있도록 세세한 항목별 지출 규모와 용처를 공개한다. 더구나 이 통계를 민간 연구·통계기관과 세인트루이스연준 등 공공기관에 전달해 다양한 형태로 통계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수치라도 공개를 꺼리는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최근 한국은행에서 저축은행 가계대출 통계를 잘못 내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는 등 신뢰도 크게 추락했다. 국가통계기관인 한은에서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은 통화정책의 신뢰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대학 연구교수는 “한국은 통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기업들도 이를 투자가 아니라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올바른 경제 정책을 마련하고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통계 수집과 민간과의 교류, 대중 공개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지금 비즈한국 홈페이지에 가시면 더욱 생생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