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민족상’ 홈페이지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설립 취지문. 사진=5·16민족상 홈페이지
5·16민족상은 5·16군사정변을 기념하는 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대 총재,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민족상 설립 취지문을 통해 5·16군사정변을 ‘민족적 일대 전환기’, ‘민족의 진로를 옳은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진통의 시발’ 등으로 표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쿠데타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5·16민족상 홈페이지에 게재된 박정희 전 대통령 프로필에는 1961년 5월에 ‘5·16군사혁명 거사’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5·16에 대한 평가는 법조계, 역사학계 등에서 ‘군사정변’으로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이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5·16군사혁명’이라는 구절이 삭제됐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5·16은 군사정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966년을 시작으로 5·16민족상은 매년 5월 16일 과학기술, 학예, 사회·교육, 안전보장, 학술, 교육, 예술, 산업, 사회 등 9개 부문에 대해 시상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총 31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현재 5·16민족상 홈페이지에 명시된 역대 수상자 명단에 따르면, 이 상은 전두환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비롯해 군·검·경 주요 보수 인사들이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수상 당시 보안소령관이었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1990년 상을 받을 당시 검찰총장직을 역임 중이었다. 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든 경찰 고위 간부 박처원과 ‘인혁당 사건’ 담당 검사 한옥신 등도 각각 1973년과 1978년 이 상을 수상했다. 최근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단독 신청해 논란을 빚은 문명고의 홍영기 학교 설립자도 1968년 이 상을 받았다.
또 5·16민족상은 미르·K재단의 닮은꼴이라 할 정도로 과거 삼성, 현대, 대우를 비롯한 기업들의 기념성금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1966년부터 이어진 5·16민족상 기부자 명단을 보면, 정주영(현대), 이병철(삼성), 김우중(대우), 구자경(럭키), 조중훈(한진), 신격호(롯데) 등 당시 재계를 주름잡던 기업인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각 기업들은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기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5·16민족상 홈페이지에 명시된 역대 수상자 명단에 따르면, 이 상은 전두환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비롯해 군·검·경 주요 보수 인사들이 받았다. 사진=5·16민족상 홈페이지
5·16이 ‘군사정변’으로 정의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도 기부금 규모는 12개 기업, 11억 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5·16에 대한 평가가 바뀐 현 시점에서 기업이 재단을 후원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013년에는 한국야쿠르트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5·16 민족상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이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역풍을 맞기도 했다.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경호실장을 지낸 바 있다. 또 지난 2011년 5·16민족상을 수상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같은해 두 차례에 걸쳐 약 8000만 원을 기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반세기 넘는 역사와 화려한(?) 수상자를 자랑했던 5·16민족상은 최근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 5·16민족상 홈페이지에 공시된 2010년도부터 2014년까지의 기부금 사용내역을 보면, 매출액과 기부금 수입액이 동일해 시상을 위한 자금을 기업들로부터 기부금 형태로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14년 운영공시 기부금 사용내역에는 시상 사업비와 별도로 통신비가 적시돼 있는데 기부금 수입은 1억 4420만 원인 데 반해 통신비로만 1억 7500만 원 가량이 과다 지출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요신문>은 이 같은 금액이 어떤 경위로 통신비로 지출된 것인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수차례 5·16민족상 측에 연락을 취했지만 어떠한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지난 22일 직접 찾은 마포구 5·16민족상 사무실도 굳게 닫혀 있었다. 해당 건물 경비원은 “우체통에는 각종 고지서와 전단지 더미만 쌓여 있다”며 “사무실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게 1년 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과 맞물려 올해 5·16민족상의 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