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해양 회생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은숙 기자
회생이냐 청산이냐를 놓고 채권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논리 대결이 한창이던 지난 3월 23일, 정부는 5조 원가량을 투입해 대우조선해양을 회생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신규지원으로 2조 9000억 원을 투입하고, 금융권의 채권을 출자전환하는 방식으로 2조 3000억 원을 더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 규모도 논란이었지만, 더욱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불과 1년 6개월여 전 4조 2000억 원에 이르는 혈세가 이미 대우조선에 투입됐다는 점이다. 더구나 당시 정부는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없다”며 추가 자금 투입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당시 정부를 대표해 이를 발표했던 사람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는 대책을 발표했다.
막대한 채권을 보유한 금융권이 직접 이해당사자라는 점, 그리고 앞으로 구조조정 과정 역시 금융권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임 위원장이 앞에 나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은 어딘가 어색한 장면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는 참석했는데, 또 다른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형환 장관은 이날 열린 관계부처장관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임종룡 위원장과 주형환 장관의 불화설이 고개를 들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산업부는 발을 빼고 싶어 하는데, 금융위가 필요 이상으로 적극적이라는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두 부처 간에는 이미 대책논의 전부터 이견이 존재했다. 금융위는 대우조선 파산 시 피해규모가 59조 원에 이르러 “국가적 재앙”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산업부는 피해 규모를 17조 원으로 추정하며 “침착한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임종룡 위원장이 ‘59조 원’을 기정사실화하며 추가지원을 밀어붙이자 산업부는 머쓱해졌고, 결국 장관회의에 불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저런 곡절 속에 진행된 대우조선 추가지원 방안 발표 자리에서 임 위원장은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연신 마른 침을 삼켰고, 추궁성 질문에는 흔들리는 듯 잠시 말이 끊어지기도 했다.
온화하면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의 평소 모습과 다소 다른 행동들은 또 있었다. 2015년 10월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이 실패하고 1년 5개월여 만에 말을 바꾼 것에 대한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지는 게 맞다. 져야 할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결기 어린 말까지 내뱉었다.
정치인이 아닌 1급 공무원에게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스스로 피해 규모를 ‘뻥튀기(?)’까지 해가며 국가적 재앙이 온다고 엄포를 놓았던 사안이다.
사실 임 위원장의 이례적 행보는 이뿐만 아니다. 그는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할 정도로 대우조선해양 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었다. 대책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22일에는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모아 59조 원의 당위성과 대우조선 회생의 필요성을 1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설명했다. 실무 책임자들이 그의 옆에 배석했지만 임 위원장은 한 번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설명했다고 한다.
이미 4조 2000억 원에 이르는 혈세가 투입된 대우조선에 대해 정부는 5조 원 가량을 추가 지원해 회생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박정훈 기자
‘영역 파괴’도 있었다. 임 위원장은 이달 중순께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을 만나 대우조선해양의 지원 방향을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 도산으로 조선업 생태계가 망가지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며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우조선이 도산하면 3사가 공유하는 협력업체들도 무너져 선박 건조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생산 단가도 높아진다는 점을 언급했다. 대우조선이 도산하면 은행들이 중소·중견 기자재 업체부터 여신 회수에 나서면서 협력업체가 어려워지고, 이 여파가 현대·삼성중공업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사태와 직접적 관련성이 적은 경쟁사 CEO들까지 직접 만나며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임 위원장은 “나라 경제를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왜 지금 대우조선을 살려야 하며, 어떤 게 최선인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국가적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대우조선발 4월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당국에서 “대우조선 문제는 국가 경제적인 파급 효과와 금융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과제”라는 설명에 힘을 싣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국은 대우조선이 도산할 경우 1300여 개의 협력업체가 연쇄 도산하고 5만 명 이상의 실업 사태가 발생해 조선산업의 생태계 차제가 붕괴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채권은행의 손실이 급증하고, 무역금융을 담당하는 수출입은행의 재무구조 악화로 수출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한마디로 ‘제2의 IMF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임종룡 위원장이 다음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우조선 문제를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3월 21일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임 위원장에게 “새 정부에 대우조선 리스크를 넘기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도로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내용은 같지만 해석이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대우조선 문제 해결이 “현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한다. 차기 정부의 원활한 경제 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무라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실상 망쳐버린 한진해운 구조조정의 실패를 대우조선을 통해 만회해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살렸어야 할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간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다는 비판이 많았던 만큼 이번에는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라도 대우조선을 살리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