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첩 춤’으로 이슈몰이를 한 그룹 BP라니아. 좌측부터 혜미, 유민, 지은, 지유, 이나, 따보.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지상파 방송들의 음악 프로그램이 90년대 이후 조금 완화됐던 검열의 잣대를 다시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특정 부위를 부각시키거나 옷을 벗는 등 선정적인 안무에 대해서는 즉각 수정 조치를 요구하거나 아예 무대에 세우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검열이 덜한 케이블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이 반사이익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케이블 방송마저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한 그룹이 있다. 앉은 자세에서 상의를 들어 올려 속살을 내비치는, 일명 ‘행주대첩 춤’을 선보였던 걸그룹 BP라니아가 그 주인공이다. 2011년 ‘라니아’로 처음 데뷔했다가 수차례의 멤버 변화를 거쳐 지난해 12월 현재의 멤버를 구성했다. ‘다국적 걸그룹’을 표방하는 그룹답게 흑인과 백인 혼혈 멤버이자 리더인 알렉산드라를 중심으로 중국인 멤버 따보, 유민, 지유, 이나, 혜미, 지은 등이 현재 활동 중이다. 이처럼 케이블 방송마저 초토화시킨 이들의 ‘행주대첩’ 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일요신문>이 직접 만나서 들어봤다. 이날 인터뷰에는 미국 일정이 겹친 알렉산드라를 제외한 6명의 멤버가 함께 했다.
- 매번 신곡을 내놓을 때마다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안무였다. 이번 ‘행주대첩’ 춤도 상당한 이슈를 끌고 있는데….
지유 : 사실 춤을 추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작이라서…. 그냥 ‘포인트 동작’이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혜미 : 아니, 별로 안 야하지 않았나(웃음)? 워낙 요즘은 더 야하고 섹시한 걸그룹이 많아서 우리로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걸그룹 BP라니아의 ‘행주대첩 춤’, Mnet ‘엠카운트다운’ 무대 캡처
- 상의를 행주치마처럼 들어 올리는 춤이라 ‘행주대첩’ 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안무가의 작명 센스인가?
지은 : 사실 대표님이 붙이신 이름이다. 우리를 모아놓고 “이 춤은 행주대첩 춤이라고 하자”라면서 유래와 역사까지 설명해주셨다.
지유 : 처음 안무 연습을 할 때는 이름이 없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기사 제목에 ‘행주대첩 춤’이라고 붙어 있길래 이게 뭔가 했다. 나중에 대표님이 설명해주시더라
- 실제 무대에서는 동작이 짧게 지나가지만 순간 포착 사진 때문에 더 큰 이슈를 낳았던 것 같다.
혜미 : 저도 그 사진들을 봤다! 솔직한 감상은 “기자 분들 나쁘다”였다. 어떻게 골라도 그런 사진만 고르셨는지(웃음).
유민 : 앞에서 그 장면만 딱 찍으시니까 원래 동작보다 더 선정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옷을 들어 올린 상태라서 얼굴이 가려지긴 했는데 우리들은 보면 누구인지 아니까 조금 민망했다.
- 안무 덕에 음원 역주행을 타고 있는데 비슷한 예로 EXID의 ‘위아래 역주행’사건과 비교되고 있다. ‘제2의 EXID’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후배 그룹의 후발주자처럼 불리는 게 마음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EXID는 2012년 데뷔, BP라니아는 ‘라니아’로 2011년에 데뷔했다).
혜미 : 어휴, 그만큼이라도 되면 좋겠다(웃음).
지은 : EXID도 그렇지만 저희는 이미 음악방송 활동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 쯤 갑자기 안무가 이슈가 됐던 케이스다. 이번 앨범으로 처음 활동할 때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 ‘행주대첩’ 춤 덕분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이전 노래들까지 듣게 되면서 역주행 대열에 끼게 된 것 같다.
지유 : 어떻게 보면 EXID가 먼저 좋은 선례를 만들어 줬던 셈이니까, 선후배 이런 문제를 떠나서 그냥 저희도 EXID만큼만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걸그룹 BP라니아. 임준선 기자
- 대부분의 여자 아이돌 그룹은 모두 ‘군통령’으로 부르지만 BP라니아는 더욱 특별하다고 들었다. 군부대 공연이 잦은 편인가?
이나 : 사실 군통령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연예병사로 있었던 붐 씨가 군 방송에서 우리 그룹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군부대 공연 무대에 서게 됐다. 공연 당일 비가 많이 내렸는데 그 비를 다 맞으면서 공연했던 게 더 큰 호응을 불러왔던 것 같다.
혜미 : 지금은 ‘행주대첩 춤’이지만 그때는 ‘쩍벌 춤’으로 이슈 몰이를 했었다. 당시 군부대 영상을 보면 군인 분들이 처음에는 조용하다가 그 안무만 하면 환호성이 터져 나오더라.
- 선정적인 안무 때문에 방송이 경고를 받거나 결국 안무를 수정하는 일도 생기는데 이렇다보니 원래 안무와 수정된 안무를 많이 헷갈렸을 것 같다.
지유 : 진짜 그렇다.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다 보면 수정한 안무가 아니라 몸에 익은 안무가 그냥 나와 버린다.
혜미 : 인터넷에는 우리가 틀린 안무를 추는 영상만 짜깁기해서 만든 영상도 돌아다닌다. 해외 팬들이 만든 영상인데 보고 있으면 “아 우리 정말 많이 틀렸구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다.
걸그룹 BP라니아. 임준선 기자
- 사실 BP라니아는 ‘걸크러시’를 표방한 그룹이기도 했는데 너무 섹시한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은지….
이나 : 사실 안무 한 동작만을 보고 선정적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건 조금 억울했다. BP라니아는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보다는 파워풀한 걸크러시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한다. 그런데 ‘BP라니아는 선정적인 안무를 추는 그룹’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섹슈얼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게 줄곧 아쉬웠다.
지은 : 특징적인 안무는 그냥 BP라니아만의 색깔 있는 퍼포먼스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유민 : 그래도 이렇게 이슈가 돼서 음원 역주행이라는 좋은 결과도 낳은 만큼 다음 번에 컴백했을 때 대중들이 한 번씩이라도 더 눈여겨 봐주시지 않을까.
혜미 : 이번 이슈를 계기로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그래도 다음 앨범에서는 논란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