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관료 출신 인사들의 금융사 취업을 두고 비판론이 일고 있다. 최준필 기자
신한은행은 최근 새 사외이사로 주재성 전 금융감독원(금감원) 부원장을 영입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박상용 사외이사의 연임을 결정했다. 은행권의 상임 감사위원 자리에도 금융 관료 출신 인사들이 들어섰다. 이주형 전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장이 KEB하나은행의 신임 감사위원 자리에 올랐으며, 이석근 전 금감원 전략기획본부장은 신한은행의 상임감사위원 연임에 성공했다.
이것도 모자라 금융 자회사들에도 사외이사를 비롯해 대표와 임원자리에 관료 출신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투자에 신규 선임된 신동규 사외이사는 재정경제부 출신에 수출입은행장과 은행연합회장 그리고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전형적인 ‘모피아’(재무관료+마피아)다. IBK신용정보에는 이호형 전 금융위원회 국장이 대표이사로, 조국환 전 금감원 금융투자감독국장이 부사장으로 있다.
정통 금융사뿐 아니라 일반 사기업의 금융계열사에도 곳곳에 관료 출신 인사들이 배치돼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 3월 27일 권오규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와 최규연 전 조달청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고, 기존 사외이사인 양성용 전 금감원 기획조정국장을 재선임했다. 삼성증권은 경제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모두 재선임됐다. 김경수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원장, 이승우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모두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동부화재 사외이사 자리에는 전원 경제 관료들이 앉아 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김성국 사외이사는 재무부 보험국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출신이며, 박상용 사외이사는 경제기획원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행정관 출신이다. 신규 선임된 이승우 사외이사는 삼성증권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이장영 전 금감원 감독서비스총괄본부 부원장을 최근 사내이사로 영입하고, 이정재 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또 감사위원으로 최한묵 전 금감원 검사기법연구소장을 신규선임했다. 키움증권은 송종호 전 대통령비서실 중소기업비서관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동부증권은 최근 김건섭 전 금감원 금융투자담당 부원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으며, 정의동 전 재경부 국고국장을 재선임했다.
전직 금감원 고위간부들이 금융권 요직으로 재취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 같은 금피아·모피아들의 금융사 취업은 금융업계 내부에서도 ‘해도 너무하다’, ‘정도가 심하다’ 등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상 금융사는 철저한 을이다”라며 “어떻게든 금융당국 출신 인사를 영입해 자사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의 재취업은 오히려 인적 역량을 재활용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금융업계에서는 금융당국 고위 공직자들의 금융 관련 전문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재부를 비롯한 금융당국 고위직은 행정고시 출신이 대다수”라며 “금융당국 출신이지만 변화하는 금융업 현장의 분위기나 실무를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 출신 한 인사는 “금융 관료의 경우 부서 이동이 잦아 전문성을 기르기 불가능한 환경”이라며 “이런 문제 때문에 사실상 금융 관료들의 전문성을 높이 사기는 힘들다”고 귀띔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앞의 리포트에서 “금융회사들이 사외이사의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외부 주주들이 추천하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며 “하지만 그것보다 고객과 주주를 보호하는 금융사 스스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