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 ||
실제로 청와대 민정팀에는 ‘한자리’(?)를 부탁하는 민원성 전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청와대 측에서는 부탁을 받아주자니 ‘보은인사’ ‘낙하산인사’라는 비판이 부담스럽고 거절하자니 공신을 내치는 것 같아 곤혹스러워 한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가뜩이나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카드마저 잘못 뽑아든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코드인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자기 입맛에 맞는 측근들을 정부 및 공공기관의 주요요직에 앉힌다는 비판에 대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반박했지만 참여정부 내내 ‘코드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정권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인사 정책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코드인사’와는 다른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 정권도 결국 인사문제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정치권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보은인사’ 논란을 짚어봤다.
‘보은인사’ 논란에 불을 지핀 곳은 다름 아닌 해외공관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LA총영사에 임명된 김재수 국제 변호사가 대표적인 케이스. 최근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대선 당시 ‘BBK 관련 해외팀장’을 맡아 LA의 현지 대책을 담당했다. LA는 김경준 씨와 에리카 김이 적을 두고 있었던 곳으로 BBK 사태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게다가 김 씨는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보은인사’ 논란은 거셌다.
이외에도 한나라당 서울필승대회 준비위원장을 지낸 김정기 씨가 상하이 총영사에, 대통령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을 지낸 이하룡 씨가 시애틀 총영사에 임명됐으나 이들 모두 총영사 업무와 관련한 경력이 미미하다. 이명박 후보캠프에서 외교자문을 맡았던 김우상 연세대 교수가 호주 대사로 발탁된 것도 보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김 교수의 경력에는 호주와 연관지을 만한 이렇다 할 경력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후 한동안 잠잠하던 보은인사 논란은 최근 공공기관장 교체바람과 맞물리면서 지자체, 언론계, 금융권, 정부 산하위원회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차관급인 2012 여수 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김병일 씨(53)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청주 흥덕갑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내정됐다가 막판에 윤경식 후보에 밀려 낙천됐던 인물. 김 사무총장은 서울시 뉴타운 사업본부장, 대변인, 경쟁력 강화본부장 등을 거쳤고,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외교통상부도 국제협력단(KOICA) 총재에 박대원 전 서울시 국제관계 자문대사(60)를 임명했다. 외무고시 8회 출신인 박 신임 총재는 알제리 대사 등을 지냈으며 이 대통령의 고향 후배로, 이 대통령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했고, 당선인 시절에는 의전팀장으로 일했다.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에 임명됐다가 1개월여 만에 사퇴한 이태규 씨는 KT 전무로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비서관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전략기획팀장을 맡아 정무·기획 분야에서 활동했다.
지방자치단체임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을 역임했다는 것과 현 오세훈 시장도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한나라당 이미지가 강한 서울시는 최근 정무부시장에 이상철 전 월간조선 대표를 임명했다. 이 자리는 지난 6개월 동안 공석이었다가 이번에 이상철 전 사장이 임명된 것이다. 이 부시장은 지난 4·9총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26번에 배정됐지만 22번까지만 당선되는 바람에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 왼쪽부터 김재수 LA총영사, 김병일 여수 세계박람회 조직위 사무총장, 박대원 국제협력단 총재. | ||
비례대표로 국회입성을 노리다 낙선한 인물 중에는 박원관 한나라당 정책국장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박 국장은 한나라당에서 제2정책조정실장, 국회 정책연구위원장을 지낸 정당인이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치와 무관한 역사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의 조사연구를 지휘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전문가는 물론 행정 관료도 아닌 한나라당 당료를 앉히려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과거사 청산을 저해하는 발언을 일삼더니 이제는 밑에서 이를 받들어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계도 ‘보은인사’ 논란이 거센 분야다. 최근 YTN 사장으로 내정된 구본홍 씨에 대해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구 사장 내정자는 대구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MBC 기자와 MBC 보도본부장 등을 거쳐 기독교TV 부사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방송 상임특보를 지냈으며 그후 언론계선 YTN 사장 내정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결국 이사회에서 사장으로 추대됐다. 구 내정자와 이 대통령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1년 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에 참여할지 말지를 놓고 고심하던 이 대통령은 고려대 후배인 구 내정자한테 자문을 구했고 이때부터 깊은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연주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에 대한 퇴진 압력이 거센 가운데 정 사장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차기 사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후보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보 특보를 지닌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유력하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전망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도 이미 MB캠프 출신의 인사가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는 총 10명이 공모했는데 이 중 한명을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내부출신 인사 2명과 MB캠프의 방송특보단장을 맡았던 양휘부 전 방송위 상임위원으로 압축된 가운데 양 전 위원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다.
금융권이나 대형공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시향 대표인 이팔성 씨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다. 우리증권 사장을 하다 지난 2005년부터 서울시향 대표로 자리를 옮긴 이색경력의 소유자인 이 내정자는 지난해 대선에서 이 후보 선대위의 경제살리기 특위에서 활동했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고, 그에 앞서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공모에 지원하는 등 금융공기업 인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결국 우리금융에 자리잡게 됐다. 이 내정자는 내정 직후 우리은행과 증권에서 37년을 근무한 경험을 강조하며 “회장 추천은 회추위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이 씨는 우리투자증권 사장 재직 시절 5년 연속 흑자를 냈다. 이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문이다.
공기업 중 최대 규모인 한국전력 사장에도 캠프 경제살리기특위 위원 출신인 정동락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름이 오르내린다. 토지공사 사장에는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건설기획국장과 균형발전추진본부장을 지낸 이종상 씨가 후보군에 들어 있다. 그는 캠프에서 정책특별보좌역으로 일했다. 이밖에도 공기업 감사나 이사를 맡으려는 캠프 멤버들이 즐비하다는 것이 여당 관계자의 말이다. 이처럼 MB캠프 출신 인사들은 아직까지 본격적인 공기업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하나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현 정권이 무리한 보은인사를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에 소위 ‘MB캠프’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렸고 대선 승리 이후 이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압박이 지나치다 보니 민간단체나 산하단체장 등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돼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사람들에게까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물러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상식의 궤를 넘어서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