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배우자 이승배 마을학교 이사장이 3월 3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마을학교 사무실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eomaster@eoimage.co.kr
―심 후보를 언제 처음 알았나.
“나는 서울대학교 75학번이고 심 후보는 78학번이다. 대학교 다닐 땐 전혀 몰랐다. 1985년 심 후보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구로 동맹 파업을 주도했다. 당시 나는 다른 곳에서 노동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구로 동맹 파업이 많이 회자가 됐다. 그때 처음 심상정의 이름을 들었다. 더군다나 여성이라고 해서 놀랐다.”
―직접 만난 것은 언제인지.
“한 모임에 ‘김혜란’이라는 가명을 쓴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심 후보였다. 수수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왔다. 논리정연하게 말도 잘했다. 사적인 얘기는 나누지 못 하고 그렇게 또 기약 없이 헤어지고 6월 항쟁 이후 대학로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만났다. ‘위험하지 않냐. 조심하라’고 말한 뒤 주머니에 있는 만 원짜리 한두 푼을 쥐어줬다.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건 내가 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일하고 심 후보는 전국회의에서 일할 때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교제하는 사이가 됐다. 당시 심 후보는 역촌동에 거주했고 나는 암사동에 살았다. 데려다주고 시간에 쫓겨 집에 가고 그렇게 만남을 지속했다. 그러다가 결혼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심 후보는 인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서울에서 양장점을 개업하게 됐는데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개업식에 왔더라. 그때 확인하게 됐다.”
―심 후보가 살림엔 무관심할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다. 가끔 짬을 내서 음식을 하는데 엄청 맛있다. 특히 게장은 자타공인 일품이다. 게장을 만들어 집집마다 나눠주기도 한다. 아들이 ‘엄마. 우리 나중에 할 일 없으면 양념 게장 전문 식당을 하자’고 할 정도다.”
―서로 뭐라고 부르는지.
“평범하다. 서로 ‘여보’ ‘당신’으로 부른다. 연애할 땐 ‘형’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심 후보가 노조 활동을 했을 때 별명은 ‘철의 여인’이었다. 40~50대 금속 계통 노동자들 몇 만 명 앞에서 연설하고 회의를 소집하는 등 강인한 면을 보여줘서 그런 것 같다. 요새 ‘심블리’라는 새로운 별명도 생겼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애칭이다.”
―심 후보는 아들에게 어떤 어머니인가.
“아들은 심 후보를 삶의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엄마에 대한 자긍심도 있다. 물론 어릴 땐 다른 엄마들과 달라서 고통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잘 이해를 한 것 같다.”
이 이사장은 “심상정은 신념의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고성준 기자
―부인 심상정과 정치인 심상정은 어떤 점이 다른가.
“좋은 질문이다. 부인 심상정이 정치인 심상정이 됐을 때 공적이고 전인류적인 가치를 위해 출가를 했다고 생각했다. 먼저 부인 심상정은 현명하다는 말이 딱 맞는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다. 슈퍼우먼이다. 정치인 심상정은 신념의 정치인이다.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출가를 했다. 심 후보가 하지 않았으면 나라도 나섰을 텐데 심 후보가 능력이 있고 또 잘한다. 부인 심상정과 정치인 심상정은 연장선상에 있다.”
―연장선상에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심 후보는 아이 낳고 보름 동안 쉬고 복귀했다.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으니 어린이집에 우리 아이만 늦게까지 남아 있다더라. 심 후보도 당시에 퇴근하고 오는 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 심 후보도 슈퍼우먼 방지법을 공약으로 만들었다. 개인의 문제로 좁히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물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려고 하는 모습이 연장선상이라고 느낀다.”
―대선 주자로서 심 후보를 평가해 달라.
“심 후보는 대선 주자 가운데 이 시대 개혁의 최적격자라고 확신한다. 시대정신이 투철하다. 17대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한 뒤 18대엔 떨어졌다. 19대 때 겨우 이겼고 20대 땐 압승을 거뒀다. 지역 주민들은 심 후보를 겪어봤기 때문에 우리 지역의 대표로 보내면 우리 것을 정확하게 관철해준다는 신뢰가 쌓인 것이다. 심 후보는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지지자가 늘어나는 후보다. 다만 정의당이 작고 노출이 적다보니 진가를 알지 못할 뿐이다.”
―진가를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렇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물중심의 정당이다. 일각에선 ‘심상정 정도면 어딜 가서 뭘 못하냐. 더 큰 정당에 가서 날개 단 듯 엄청 잘할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보정당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당하고 구분되는 것은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심 후보는 25년간 노동 운동을 해왔고 13년간 진보정책을 해왔다. 40년간의 역사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아내를 위로해주는 방법이 있는지.
“스스로 해결을 잘하는 편이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은 꼭 챙겨준다. 소소한 기쁨이다. 기억해주면 ‘안 잊었네’라며 만족해한다. 또 일로 바쁘니 빈 구석이 뭘까 생각하고 그 부분을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시댁 처가댁 일을 많이 챙기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심 후보 본인도 지지율 생각하면 ‘이게 현실이구나’라면서 ‘왜 이럴까’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심 후보가 공약을 줄기차게 발표하고 있다. 과거에 무상급식을 민주노동당에서 제기했을 땐 ‘복지병’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이 됐다. 이젠 친노동개혁 정부가 돼야 한다. 심상정이나 진보정당이 얘기하는 가치에 대해 정확히 알면 심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 누가 진정으로 촛불 민심을 해낼 수 있는지 잘 살펴봐 달라.”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