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순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진 후 대중의 관심은 정치로 쏠렸다. JTBC 뉴스 시청률이 10%를 넘어섰고, 시사 토크쇼의 바람도 거셌다. 관련 다큐멘터리들도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너무 웃고 떠드는 건 지양하자”며 연예계는 다소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탄핵 인용 이후 대선 일정까지 확정되며 연예계는 더욱 골치 아파졌다. 통상 3~5월은 ‘위기의 계절’로 꼽힌다. 봄맞이 나들이객이 늘면서 TV 시청률이 하락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도 줄기 때문이다.
가요계 역시 대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야외 나들이에 사람들이 몰리고 대학가 축제가 겹치는 이 시기는 가요계 행사가 가장 많은 때다. 때문에 이 시기에 맞춰 신곡을 발표하고 활동 기간으로 삼는 그룹이 적지 않다.
4월 복귀를 앞두고 있는 걸그룹 EXID.
하지만 올해는 “과연 신곡 홍보 효과가 있을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중의 관심이 온통 정치로 쏠려 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벚꽃 만개와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에 맞춰 곳곳에서 열리던 축제들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가요계는 활동 시기를 앞당겨 4월 초를 대거 공략하는 분위기다. 대선일인 5월 9일에 가까워질수록 관심을 받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에 일찌감치 치고 나가자는 전략이다. 게다가 대선을 피하기 위해 컴백 시기를 늦추면 대기하는 동안 감수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고, 같은 이유로 컴백을 미뤘던 가수들이 몰려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복귀하는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이유, 태연, 개코, 브라운아이드소울 등 음원 강자를 비롯해 이미 충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걸그룹 EXID와 에이핑크가 눈에 띈다. 또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인 그룹 모모랜드, 라붐, 다이아 등도 4월 대전에 승부를 건다.
일각에서는 “사실 대선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는 적은 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선이 치러지는 5월 초는 근로자의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등 무려 3일의 휴일이 포함된 징검다리 휴가 기간이다. 연차 휴가 1~2일을 붙여 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결국 이 시기는 가요계에서도 이미 ‘변수’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대선까지 겹친 것뿐”이라며 “대선과는 별개로 이미 그 시기에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꺼려왔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조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방송가는 더욱 민감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언제 어떤 이슈가 새롭게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 이후 각 방송사들은 종종 정규 방송 대신 현안과 관련된 특별 편성을 시도했다. 지난 3월 탄핵 선고일에는 KBS, MBC, SBS 모두 정규 편성을 취소하고 탄핵과 관련된 특별 방송으로 편성표를 채웠다.
게다가 봄은 전통적으로 방송가의 비수기로 꼽힌다. 특히 나들이를 많이 떠나는 주말엔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 하락폭이 큰데 징검다리 연휴에 대선까지 겹치며 더욱 계산이 복잡해졌다. 한 지상파 방송사 고위 간부는 “장미 대선은 선거 운동 기간이 짧은 만큼 더욱 치열할 것이며, 정치 이슈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다”며 “편성은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방송사들은 서로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며 운용의 묘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극장가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금껏 영화 흥행 추이를 살펴봤을 때 징검다리 연휴 때 관객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대선일 역시 공휴일로 지정됐기 때문에 일찌감치 투표를 마친 이들이 개표가 시작되기 전 극장으로 발길을 할 것이라 내다보는 이들도 많다.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
5월 초에는 배우 이성민, 조진웅이 출연하는 <보안관>, 김주혁과 고수가 주연을 맡은 <석조저택 살인사건> 등이 나란히 개봉된다. 또한 고정 팬층이 많은 할리우드 마블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이는 블록버스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도 5월 3일 출사표를 낸다.
‘대선 특수’를 노리는 영화도 있다. 4월 26일 개봉되는 영화 <특별시민>은 대권을 노리는 서울시장이 서울시장 3선을 위해 선거 공작 전문가, 청년 광고 전문가 등과 손잡고 벌이는 선거 이야기를 담았다. 흥행 배우 최민식, 곽도원, 심은경 등이 출연하는 데다 현실의 선거정국과 맞물려 대중적 관심이 높다.
절묘한 시점에 개봉하게 된 <특별시민>의 연출을 맡은 박인제 감독은 “3년 전부터 기획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올지 전혀 예상 못했다”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든다”고 말했다.
영화는 픽션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다면 선거를 앞둔 대중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박 감독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 몇 퍼센트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한국에 살면서 체화된 것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돼 있다”며 “영화가 끝나고 각자 시민, 국민으로서 갖고 있는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