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본부 인근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016.1.7
소형화를 통한 탄두 기술은 물론 수소탄 개발까지 거론될 정도로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은 모방과 교류를 토대로 발전한다. 원자로 지원 및 과학자 교류 등 북한의 핵 개발사에 있어서 과거 구소련의 공식·비공식적 원조는 (여전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일부 조명된 부분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조총련계를 통한 일본의 핵기술 유입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사에 있어서 일본은 왜 간과됐던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설마’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피폭국가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일본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은 기초과학을 토대로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톱 부류에 속하는 기술 국가다. 그들이 잠재적으로 지닌 핵기술 수준은 상당하다. 그 중심에 일본 최고 연구기관으로 꼽히는 이화학연구소(RIKEN·리켄)가 있다. 1917년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연구소로 발족한 리켄은 그동안 노벨물리학상 두 명과 노벨화학상 한 명을 배출했다.
특히 리켄은 일본 핵기술(특히 우라늄 농축 기술)의 핵심 연구기관이자 보고다. 리켄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 육군이 발주한 이른바 ‘2호 계획(핵폭탄 제조 계획)’에 참여한 핵심 연구기관이다. 북한과의 인연도 깊다. 리켄은 1940년대 북한 황해도 평산에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 함경북도 라흥에 자본금 1000만 엔을 들여 ‘리켄특수제철공장(비행기제작에 필요한 마그네슘 특수강 제작)’을 설립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리켄이 다른 일본 연구소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리켄은 과거부터 타 공립연구기관들과는 다르게 연구원 국적 조항을 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능력을 위주로 인사를 진행했기에 해외 출신 연구원들도 다수 존재했다. 여기에는 한국 출신의 과학자들도 존재했지만, 북한 당국과 커넥션이 있었던 조총련계 과학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해외 과학자들에게 문호가 열려있었던 리켄은 기술유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문제는 일본 현지에서도 자주 문제시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일본에서는 방첩 관련 법안이 새로이 제정됐고, 기술유출 문제는 잠잠해질 수 있었다.
필자가 입수한 조총련 관련 문건을 살펴보면 리켄에 몸담았던 조총련계 인물 중 핵심인사로 이시구 박사가 등장한다. 이시구 박사는 1926년 4월 19일 생으로 경북 의성군을 본적으로 두고 있는 조총련계 과학자다. 1948년 교토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이 박사는 오사카대학원에서 원자력 부문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는 1958년 조선대학교(조총련계 고등교육 기관)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1985년~2000년 조총련 산하 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과협) 회장 및 핵심 상근임원으로 활동했다.
주의할 점은 바로 이 박사가 일본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후스미 코지 박사의 애제자였다는 점이다. 1909년생인 후스미 코지는 2008년 99세로 사망하기까지 리켄의 핵심 과학자로서 일본 우라늄 농축 기술 연구와 플라즈마 상태(전자와 이온이 분리)의 우라늄 핵폭탄 효율성 증대 연구 분야에서 큰 획을 그었다. 그는 앞서 2호 계획에 핵심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박사와 후스미 코지 박사의 사제 관계는 일본 몇몇 언론에서도 주목한 바 있다. 2000년대 중반 조총련계 과학자들의 산실이자 기술 유출 경로였던 ‘과협’이 일본에서 주목받자 두 사람이 입방아에 올랐던 것이다.
이 박사는 오사카 대학원 시절 후스미 박사의 조교로 일했다. 여기서 인정받은 이 박사는 후스미 박사의 애제자로 선택받았다. 그는 후스미 박사 연구실의 최고 모범생이었으며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발전했다. 이 박사는 후스미 박사의 연구 사업에 가장 밀접하게 참여했으며, 우라늄 융합과 관련해 플라즈마 상태에서의 핵반응 기술 등 주요 기술들을 북으로 유출했을 것으로 보인다.
후스미 코지 박사
더군다나 1989년 후스미 박사는 조총련 과협대회에 초청돼 직접 단상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 후스미 박사는 제자 이시구 박사와의 두터운 사제관계를 강조하며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후스미 박사 자체가 조총련계와 북한 당국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을 증명한 셈이다.
북한은 현재 플라즈마 상태에서의 핵반응 연구 성과에 대해 대외적으로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의 기술 유입이 결정적 계기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스승 후스미 박사를 통해 일본 리켄의 핵심 핵기술을 북에 전달한 이시구 박사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차례로 만나며 북한 당국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얻었다. 실제로 이 박사가 평양을 오갈 때마다 당 군수공업 담당 비서가 늘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강도 강계시 공귀리에 위치한 북한의 주요 군수연구기지 내 핵 연구소에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후문이다. 이곳은 북한 내에서도 보안이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하며 심지어 북한 내각총리도 출입이 제한된다.
이 박사는 훗날 북한 당국으로부터 자연과학 학술분야 명예 칭호인 ‘공화국 원사’를 하사받았다. 이 박사는 입수 문건 작성 시점인 2010년 이후 외부 활동이 목격되지 않았고, 고령인 터라 현재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일본 ‘대북 제재 리스트’에 조총련계 과학자 5인 올려 일본 정부가 지난 2016년 2월 조총련계 핵·미사일 과학자들을 대거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려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여기에 포함된 인물은 로켓 엔진 과학자 서석홍 박사를 포함해 서판도, 변철호, 리영독, 양덕차 등 모두 다섯 명으로 파악된다. 명단에 포함된 다섯 명 모두 조총련 산하 과협 소속이다. 지난해 2월 발동한 일본 정부의 대북제재 내용은 인적왕래 규제, 대북송금 금지, 북한국적 선박과 북한에 기항했던 제3국적 선박의 입항금지, 북한 관련 자산동결 확대 등 총 10여 가지 항목이다. 리스트에 포함된 조총련계 과학자들은 당분간 북한과의 교류에 있어서 통제받을 가능성이 높다. 니시오 일본 국기연 기획위원은 현지의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섯 명 이외의 과학자는 여전히 자유롭게 북한과 일본을 왕래할 수 있다”라며 “재입국 불허 명단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미사일 기술을 북한과 같은 적성 국가에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현행 법규로는 통제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법적 틀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