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 자주포들이 대대전술훈련간 진지 기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육군본부
“방사청은 법 절차를 무시했으며, 검찰 무혐의 처분에도 환수를 강행했다.”
지난 4월 4일 국민권익위원회는 방사청이 한 중소업체에 환수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환수한 금액을 업체에 되돌려줄 것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방사청은 환수금액 산정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환수금액을 책정했고, 강제로 환수한 것은 지위를 이용한 횡포”라고 밝혔다.
# 국산 핵심 무기서 ‘잡음’
K-9 자주포는 우리 군의 핵심 화력 중 하나인 국산 무기다. 현재 국내 서북도서와 전방 지역에 900여 문이 설치돼 있다. 지난 2010년엔 북한의 연평도 기습포격에 맞선 무기로 주목 받기도 했다.
또한 K-9 자주포는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독일제 자주포와 비교해 성능은 유사한 반면 가격이 절반 수준이라 국산 무기 가운데 ‘수출 효자’ 품목으로 꼽히기도 한다. 문턱이 높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유럽 방산 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는데, 터키(2001년)를 시작으로 폴란드(2014년), 핀란드(2017년 3월)에 이어 지난 4월 2일엔 인도 정부가 자주포 100문 도입을 승인했다. 인도와의 계약 금액만 약 7200억 원에 달한다. 실제 계약이 체결되면 국산 지상무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잡음’이 생겼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K-9 자주포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것.
당시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가 된 업체의 대표는 2008년 1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K-9 자주포, K-55 자주포 등에 들어가는 전원공급장치 1100여 개를 국내 대기업 방산업체에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 대표는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코일 감는 공정 일부를 외주업체 2곳을 통해 진행했는데, 이를 자체 생산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1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익명의 제보자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알렸고 권익위는 심사 후 경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부터 불거진다. 방사청이 검찰 수사가 시작도 되기도 전인 지난해 5월 환수 처분을 내린 것. 경찰의 기소의견만을 근거로 중소업체가 사전 통보 없이 외주제작을 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사청은 부당이득금 및 가산금 명목으로 20억 5600여 만 원을 중소업체가 향후 지급해야 할 물품 대금에서 상계 처리했고, 최근까지 환수를 진행하고 있다.
# 사기 적용 가능했나
당시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군 안팎의 방위사업분야 전문가들과 방산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서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오갔다. 사기 혐의를 받은 업체의 계약관계를 보면 방위사업법 적용 대상이 아닌 일반업체인 데다, 일반업체가 생산 과정에서 외주 제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알리지 않은 행위가 국가에 손실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문제가 된 업체의 계약관계를 보면, 이 업체는 방위사업청의 ‘재하도급업체’로 방사청(갑)⟶A 방산업체(을)⟶B 방산업체(병)⟶사기 혐의 중소업체(정)의 순으로 계약돼 있다. 즉, 앞서의 업체는 방사청과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닌 B 방산업체와 ‘사적 계약 관계’다.
따라서 문제가 된 중소업체와 B 방산업체 간 계약은 방위사업법 및 관련 내부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방사청과 A 방산업체의 관계가 방산수의(확정)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중소업체와 B 방산업체 간 계약은 ‘사인(私人) 간의 일반계약’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두 업체의 계약서에도 방위사업법이 아닌 “하도급법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하도급법에는 업체가 생산 과정에서 외주제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한 내용을 알리거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의무는 없다. 생산 비용 절감은 일반 기업의 통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다만 방산업과 관련해 업체별 계약특수조건에 따라 통보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업체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중소업체가 작성한 서류 중 문제가 된 것은 ‘작업 공수’ 부분인데, 여기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작업 공수는 부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과 인건비를 기록하는 부분이다. 이 업체는 모두 자체 제작으로 작업 공수를 계산해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소규모 중소기업들은 작업 공수를 세부적으로 구분해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직원 숙련도, 납품 기일 변경, 수요 증가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 계약 시점에 정확하게 작업시간을 명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보통 작업 공수는 평균을 내서 작성한다. 현장 상황이 조금이라도 반영됐다면 사기로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방사청, 검찰 무혐의에도 ‘모르쇠’
검찰의 판단도 앞서의 ‘계약관계’를 근거로 내려졌다. 수원지방검찰청은 지난 10월 31일 중소업체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검찰 불기소결정서를 보면 △중소업체가 부품을 외주제작할 경우 B 방산업체에 고지해야 한다는 계약 규정은 없고 △외주제작 여부는 업체의 경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자체제작을 한 것처럼 자료를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 B 방산업체를 속이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돼 있다.
중소업체는 검찰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지난해 11월 방사청에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방사청은 방위사업관리규정 제420조 제2항을 근거로 중소업체에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통보했다. 이 규정을 보면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 대상 업체는 1. 검찰에 기소된 업체 2. 원가검증 실시 후 부당이득금에 대한 원가회계심의위원회의 심의가 예정된 업체 3. 기타 외부기관(검찰, 경찰, 조사본부 등)에서 부당이득 편취사실 및 금액 등이 확인된 업체로 명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업체는 검찰 무혐의 처분으로 1번, 3번 규정에서 벗어났으며,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 시점 당시 원가검증 자체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2번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방사청은 내부 규정에 따라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사청은 중소업체의 취소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위사업법의 부당이득 편취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있으므로 ‘특별원가검증’을 실시한 후 이 민원 환수처분 결정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방사청은 앞서의 계약관계에 있는 A, B 방산업체를 거쳐 중소업체에 특별원가검증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업체의 고충 민원을 받은 권익위도 방사청이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권익위는 “방사청이 환수금액 산정을 위해 필요한 원가검증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20여 억 원을 환수금액으로 책정한 것은 잘못됐다”며 “방사청이 직접적인 납품 계약을 맺지 않은 중소업체에 원가검증을 요구하는 것도 월권행위”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또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은 취소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 등을 통해 부당이득이 확인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익위의 시정권고 이후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사청, 계약관계에 있는 A, B 방산업체들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처분 취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찰이 사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중소업체가 챙긴 것으로 보이는 부당이득 의혹은 명확하게 확인해주지 않았다. 부당이득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의 “방사청이 중소기업에 대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처분을 결정하고 검찰 무혐의 이후에도 결정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확인해 봐야 한다”고만 답변했다. 또한 권익위의 지적에 따라 방사청이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닌 중소기업에 ‘특별원가검증’을 실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지만 방사청 관계자는 “방사청과 직접 계약을 맺은 건 A 방산업체다. A 업체에 원가검증을 요청해 둔 상태라 그쪽에 문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A 방산업체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중소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은 업체는 B 방산업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B 방산업체 관계자는 “방사청과 중소업체 간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어 언급하기가 어렵다. 계약 내용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 대응 방법이 없다
앞서의 중소업체는 지난 1999년 K-9 자주포 전력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왔다. 이 업체가 납품하는 전원공급장치는 수리 장치나 액세서리 장치가 아닌 K-9의 ‘주요 부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 업체를 제외하면 현재 K-9 전원공급장치를 생산·납품할 수 있는 또 다른 업체는 없으며, 국내에서 개발한 무기라 수입 대체품 역시 없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이 부품은 초기 개발에 5년이 걸렸다. 새로 개발하려면 최소 2년이 걸릴 것”이라며 “부품 품질 관리 등의 이유로 현재 한 공장에서만 양산하고 있어, 다른 공장에서 곧바로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중소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려있다. 이 중소업체의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납품 대금의 30%를 떼어내 납부했고, 9월부터는 70%를 떼어내고 있다. 거액의 환수금도 문제지만 국가방위사업에 차질을 빚은 업체로 낙인 찍혀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까 더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소업체가 직접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권익위는 “근거없이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과 가산금 부과 처분을 받을 경우 행정소송 등을 통해 취소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방사청이 계약 관계에 따라 A 방산업체⟶B 방산업체⟶중소업체 순으로 처분 결정을 내린 탓에 중소업체는 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될 수 없다.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A 방산업체가 소송을 대리해야 하지만 방사청과의 계약관계에서 ‘을’인 A 업체가 쉽게 움직이기는 어렵다. 현재 중소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넣는 게 전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각에선 중소업체 변경도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계약 관계에서 가장 아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요 부품 생산 업체마저도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국산 방산기술 축적이나 개발은 앞으로 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