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에 있었던 드들강 살인사건은 초동수사부터 난항을 겪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박 아무개 양은 드들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부검 결과 성폭행 이후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 양의 몸에서 나온 DNA를 박 양의 거주지 주변 우범자와 동종 전과자 등 200명의 머리카락과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미제사건으로 남고 시간이 흐르면서 박 양의 부친이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지난 2009년 자살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2년 검찰은 장기미제 성폭행 사건을 위해 피의자 DNA를 대조하던 중 박 양의 피의자인 김 씨를 발견했다.
송 씨가 보내 온 편지의 일부.
그렇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경찰이 김 씨 관련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됐지만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한 것. DNA 발견으로 성관계 사실은 입증이 됐지만 성폭행과 살인 혐의까지 입증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소시효를 채워 영구 미제사건이 될 상황이었지만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합동 재수사가 지난해 2월 시작됐다.
이때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박 아무개 검사에게 지난해 4월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이는 김 씨와 교도소에서 알게 된 송 씨가 보낸 편지였고, ‘김 씨가 드들강 사건 당시 범행을 자백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송 씨는 김 씨와 교도소에서 알게 된 경위를 시작으로 김 씨가 송 씨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 내용들을 다섯 차례의 편지에 걸쳐 제보했다. 경제사범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송 씨는 지난 2015년 10월께 새로 지은 교도소로 옮기면서 김 씨를 알게 됐고 다음해 3월부터는 서로 인사를 하며 지냈다.
이들은 각자 독거실에서 지냈기 때문에 주로 운동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 씨는 송 씨에게 ‘경찰관이나 수사기관을 상대로 진정소송을 제기할 것인데 아는 내용이 있냐’며 상담을 구하기 시작해 법전을 빌리기도 하는 등 사이가 가까워져 나중엔 형 동생 사이로 발전했다. 김 씨는 피고인으로 재판에 섰을 때 송 씨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 씨는 교도소 내에서도 민사, 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법률 지식이 상당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송 씨와 많이 친밀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드들강 사건의 피의자로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며 “구속 수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때 송 씨는 김 씨가 범인임을 직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화를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씨는 “피해자와는 게임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이였고, 그날도 불러내서 만났는데 반항을 해 제압을 했고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고 송 씨가 이후 상황에 대해 물어보자 “뻔한 상황을 왜 자꾸 물어보냐”며 화를 냈다.
또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범행 이후 친척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예전에 만났던 애인과 조카를 친척집 인근으로 데려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송 씨는 김 씨가 ‘애인을 섭외하기 위해 예전에 만났던 여자들에게 다 연락했다. 조카는 가끔 용돈을 줘서 내가 부르니 선뜻 왔다’며 “구정 때 친척집에 갔었는데 며칠 지나 다시 갔다. 알리바이를 만들 목적이 아니었으면 뭐하러 갔겠냐”고도 말했다고 했다. 김 씨는 알리바이를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진을 숨겼다.
앞으로 있을 검찰 조사에서 그 사진을 이용해 유리한 진술을 준비하기 위해 김 씨는 송 씨에게 ‘검사 입장에서 물어볼 것을 질문해달라’고 했고, 송 씨는 질문지를 전달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건네받는 식으로 사건의 정황을 파악했다. 송 씨는 또 “김 씨가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언하면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송 씨는 알게 된 모든 내용을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박 검사에게 제보했다. 이후 검찰은 김 씨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사진의 실체를 확인했다.
송 씨가 검찰에 제보한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송 씨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나에게 유리하게 증언하지 않으면 친한 재소자들에게 말해 작업해버리겠다”고 말했다. 송 씨는 “김 씨가 더는 내가 필요없다는 식이었고 ‘자신을 돕기로 했다가 돌변해 검찰에 범죄사실을 다 말해버렸다’고 못살게 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김 씨를 협박죄로 고소했지만 검사가 자의적으로 종결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접근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김 씨가 앞으로 무슨 행동을 저지를지 너무 두렵다. 공익적인 순수한 목적으로 제보를 했는데 자칫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피신청인은 신청인의 의사에 반하여 신청인 및 사건본인 등에게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여서는 아니된다’ 등의 조항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교도소 내 접근금지 가처분이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교도소 자체가 수용자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고 각자 수용 공간이 분리돼 있어서 원천적으로 접근이 금지된다고 볼 수 있다”며 “협박죄의 경우에도 협박을 말해줄 증인을 찾기가 쉽지 않고, 증거가 명확하지 않으면 힘들다. 재소자를 어떤 식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법적 조항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송 씨는 지난해 6월 교도소 계장과의 상담으로 사동을 옮겼지만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송 씨는 “박 검사에게 결정적 증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한 조사를 받았고 신변 보장이 없어 결국 김 씨를 포함한 다른 재소자들에게 협박까지 받게 됐다”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 갔다. 내가 재소자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챙기고 신변 보호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김 씨가 교도관을 통해 송 씨가 검찰에 제보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송 씨는 밤 11시까지 검찰청에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재판에 증인 출석을 위한 소환장을 받았다.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하거나 구인 조치될 수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재소자 인권을 담당하는 강성준 활동가는 “재소자가 자신과 상관없는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검찰 조사 당시 자신의 신변을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신변보호가 이뤄지겠지만 진술서를 작성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면 증거능력이 부여되기 때문에 재판 출석 등에서 신변 보호가 이뤄지기 힘들다”며 “협박하는 재소자가 협박당하는 재소자와 사동분리가 이뤄졌다면 접견 대기 공간 이외의 생활공간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피해자가 불안감을 느낀다면 교도소 이송도 가능한 방법인데 이를 요구하는 것이 수용자의 권리에 해당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