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는 물론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한 1837년부터 1901년까지를 말합니다. 64년의 긴 시간입니다. 이 시기를 흔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부릅니다. 또 양당제 입헌군주제를 정착하고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확립한 시기입니다. 산업혁명의 거친 후폭풍을 안착시킨 시기이기도 합니다. 영국으로서는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많았던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시아 국민들은 독립을 하기까지 영국에 의해 큰 고통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영화 ‘영 빅토리아’는 남편 알버트공과의 사랑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 시대의 최고 권력이던 빅토리아 왕실은 그간 엘리자베스 왕실처럼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진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자체의 삶이 크게 드라마틱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영화 <영 빅토리아>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냥 평범하고 성실한 통치입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누가 왕위에 오르건 그 시대는 해가 지지 않았을 거라는 평도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를 다룬 영화 <영 빅토리아>는 제목 그대로 18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과 후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알버트공과의 사랑에 초점을 둔 영화입니다.
빅토리아는 삼촌 윌리엄 4세가 죽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따라서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양당제에서 왕실과 가까운 ‘보수당’보다 ‘진보당’에 손을 들어주어 총리와 갈등을 빚고 즉위하자마자 위기에 빠집니다. 이 시기를 지혜롭게 도와준 사람이 남편 알버트공이고 독일인이던 그는 영국 문화발전에 값진 유산을 남겼습니다. 알버트가 42세에 병으로 죽자 빅토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남은 평생을 상복처럼 검정옷을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강직하고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소설 ‘폭풍의 언덕’을 쓴 브론테의 남동생이 그린 세 자매의 초상화. 빅토리아 시대는 영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다.
2012년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 여왕이 68년간 쓴 일기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즉위 50주년, 60주년을 겪는 생생한 감상이 적혀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아끼던 강아지들의 모습이나 묘비명까지 기록해 이채롭습니다. 일기는 모두 141권, 4만 3000여 페이지에 달합니다. 비서역을 맡은 막내딸 비어트리스 공주가 어머니 체면을 생각해 많은 부분을 삭제했는데도 엄청난 양입니다.
155센티미터의 작은 체구. 고집 센 빅토리아는 매일 한 시간씩 총리와 정치현안을 논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각에서 보낸 보고서도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다 읽었다고 합니다. 성실함이 평생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한편 빅토리아는 자신도 여자였으나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소설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은 처음엔 남성작가 이름으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자매의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영국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영국문학은 이 시대에 찬란한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미얀마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생각합니다.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도 생각해봅니다. 지난 역사에서 그 덕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시대를 감당할 지혜,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결단, 사랑과 용기, 정직함, 성실함 등. 빅토리아 시대는 도덕주의, 엄숙주의 속에서 허영과 오만이 도사리던 시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누가 왕위를 오르든 해가 지지 않을 거라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긴 재위 기간에 정직하고 성실한 하루하루가 없었다면 그 전성기가 짧게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13세부터 시작해 죽기 열흘 전까지 쓴 일기의 일부들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쓴 평생의 기록입니다. 오늘도 제가 사는 동네의 빅토리아 이름이 들어간 호텔을 지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 속을 걷는 것처럼 미얀마 사람들이 호텔을 스쳐 지나갑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