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31일 KT분당사옥에서 ‘2017 그룹경영전략 데이’에 참석한 KT그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 KT
KT에 따르면 황 회장은 지난 2월 ‘5대 플랫폼 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통신업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플랫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금융거래 ▲미디어 ▲스마트에너지 ▲재난·안전 ▲기업·공공가치 향상 등 5대 플랫폼을 집중 육성하고, 이미 ‘레드오션’이 된 이동통신 시장과의 시너지를 내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2016년 말 기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는 6028만 명으로 전체 인구(5169만명) 대비 보급률 116.6%에 이르렀다.
KT의 이 같은 구상은 ‘야심작’ 케이뱅크를 통해 구체화됐다. 지난 4월 3일 첫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의 장점으로는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1호로 모바일 환경에 특화된 금융거래 서비스, 기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출 금리 등이 꼽힌다. 출범 3일 만에 가입자 7만 5000명을 돌파한 케이뱅크는 연내 수신 5000억 원, 여신 4000억 원 유치를 목표로 잡았다. ICT(정보통신기술) 업계에선 벌써부터 케이뱅크가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분위기다. 누구보다 케이뱅크의 성공을 바랄 황 회장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케이뱅크 개소식에 참석한 황 회장은 “KT는 케이뱅크의 성공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2015년 대비 2016년 KT가 보유한 현금 등 유동자산은 1조 원 이상 증가했다.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초기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KT 관계자는 “우리가 국내 ICT기업 가운데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서비스하게 됐는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시장의 기대를 받고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KT는 케이뱅크가 초기 자본금 2500억 원을 대부분 소진했기 때문에 향후 증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 금융결제 시스템 구축에 자본금 절반 이상을 쏟았고, 가입자가 점차 늘고 있는 만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고, 대출 규모 또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이뱅크가 자기자본을 늘리기 위해선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핵심은 ‘은산분리’ 완화다. 정부는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이 금융자본(은행)을 소유할 경우 무리한 여신 제공 등으로 금융자본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근거를 들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4%로 제한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최대 10%까지 지분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의결권은 그대로 4%만 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KT는 케이뱅크 설립을 주도했지만 실제 지분은 8%만 들고 있다. 우리은행과 GS리테일 등이 케이뱅크 지분 10%를 소유하고 있다.
앞서 KT는 금융위원회로부터 케이뱅크의 은행업을 인가받는 과정에서 이른바 ‘비례적 자본조달안’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례적 자본조달안’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KT 등 케이뱅크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는 주주들은 보유 지분만큼 증자에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KT가 4000억 원을 케이뱅크 자본금으로 납입한다면 우리은행은 지분율에 따라 1조 원을 납입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재무적 투자자 위주로 구성된 케이뱅크 컨소시엄 가운데 수천억 원의 자본금을 추가 납입할 수 있는 곳은 KT밖에 없다. 우리은행은 경쟁은행(케이뱅크)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배임 소지가 있다.
지난 4월 3일 제1금융권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 출범식. 사진제공=케이뱅크
즉 은산분리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케이뱅크가 거액의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황 회장은 케이뱅크 개소식에서도 은산분리 완화를 거듭 촉구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앞서 KT는 은산분리 완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꾸준히 접촉해 관련법 개정을 설득했다. 국회에는 이미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한 법률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그러나 관련법의 통과 가능성은 현재로서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동양그룹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산업자본이 대주주의 지위를 악용해 금융사를 사실상 ‘사금고’로 활용하다가 부실을 초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KT가 은행업 인가를 받을 때 분명히 비례적 증자안을 제출하고 금융위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느냐”며 “그런데 이제 와서 인가된 안이 현실성이 없으니 ‘법을 바꿔달라’고 하면 KT가 거짓말로 인가를 받았거나 금융위가 엉터리 심사를 했다는 말이 된다. 법률적 판단에 따라 인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도 “KT가 은행업을 단순 ICT 산업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든다”며 “금융결제시스템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데다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고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일반 사업처럼 굴리면 리스크가 커져 금융사고 등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김 연구원은 “결국 KT가 (은산분리 완화로) 은행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핀테크 발전을 명목으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있진 않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기존 제1금융권에선 케이뱅크의 ‘돌풍’을 예의주시하면서도 금융업의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케이뱅크의 성패는 대출 상품의 경쟁력에 달려 있는데 아직까지 눈에 띄는 상품은 보지 못했다”며 “사업 준비 과정에서 (KT가)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우리은행과 꽤 마찰이 있던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도 주도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T는 케이뱅크 외에도 국가가 발주한 임시전력 공급 계약을 따내고, 부동산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통해 주택 임대 사업 등에도 발을 뻗고 있다. 첫 임기 당시 통신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은 황 회장은 연임 이후 신사업 발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KT새노조 한 간부는 “전임인 이석채 회장 때처럼 이것저것 일을 벌이다가 만에 하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면 그 책임은 또 다시 남은 조직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이석채 회장은 ‘탈통신’을 강조하고 KT와 연관성이 희박한 사업에 투자했다면 황 회장은 우리가 잘하는 ICT 기술을 기반으로 시너지를 내거나 융합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