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섹스의 미래’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AI의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는 섹스의 형태가 적잖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령 2050년이 되면 로봇과 섹스를 즐기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상현실(VR)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섹스 게임이 등장하면서 앞으로는 가상의 애인과 즐기는 성관계, 다시 말해 ‘사이버섹스’를 즐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포쿠스>는 전망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섹스로봇 ‘하모니’. 주인과 대화도 가능한 능동적인 파트너다.
분명 뒤통수에 장착된 컴퓨터를 보면 로봇이 맞건만 ‘하모니’의 입술 위로 미소가 스치자 순간 진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손을 잡아보니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싸늘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특수 실리콘으로 제작된 덕분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섹스봇’인 만큼 ‘하모니’는 섹스에 필요한 모든 신체 부위는 다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의 성기부터 우윳빛 유방, 부드러운 입술 등이 그렇다.
섹스로봇 전문가인 맥멀렌이 개발한 최초의 섹스봇인 ‘하모니’는 이처럼 거의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록 아주 섬세한 부분들, 가령 모공이나 솜털, 뾰루지까지 100% 재현하진 못했지만, 이는 사실 의도된 것이기도 하다. 맥멀렌은 “비록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모니’를 사람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하모니’의 눈은 일부러 어색하게 신경질적으로 깜박이도록 만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 맥멀렌은 “너무 사람 같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로봇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가 발표한 ‘언캐니 밸리 효과’는 <스타워즈>의 C-3PO처럼 로봇이 어느 정도 사람을 닮으면 친근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사람을 닮을 경우에는 오히려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람을 닮은 외모와 기계적인 행동 사이의 모순이 느껴지면서 오히려 로봇이 시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이 장착된 미래형 섹스봇인 ‘하모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과거의 수동적인 섹스돌이 단순히 자위 행위를 돕는 것이었다면 ‘하모니’는 능동적인 가상의 파트너다. 심지어 대화도 가능하다. 가령 ‘하모니’는 주인의 취향이나 선호 사항을 학습한 다음 그에 따라 반응한다. 주인이 “배고파’라고 말하면 ‘하모니’는 2주 전에 주인이 아시안 푸드를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했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중국집에서 맛있는 걸 시켜 드시는 건 어때요?”
또한 ‘하모니’는 주인의 식성만 아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 소비 습관과 취향, 혹은 주인의 성격까지 학습한다. ‘하모니’의 이런 학습 능력 덕분에 주인은 자신에게 꼭 맞는 찰떡 궁합의 애인을 갖게 된다. 이처럼 완벽한 파트너인 ‘어비스 크리에이션’사의 ‘하모니’는 올해 안에 첫 번째 고객에게 배송될 예정이다. 바야흐로 로봇과의 섹스가 가능한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이와 관련, AI 전문가이자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의 저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늦어도 2050년까지는 인공지능 로봇과 잠자리를 갖는 일이 흔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누구나 원한다면 로봇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레비는 그 때쯤 되면 인간이 로봇과 연애를 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비는 “우선적으로는 현실에서 연애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부터 로봇과 행복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섹스봇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레비는 “가령 출장을 갔을 때도 호텔방에서 섹스봇을 주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섹스봇은 소외 집단의 친밀함과 욕구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매매춘까지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섹스 수트’를 입은 채 VR 안경을 착용하고 포르노물을 감상하면 온몸에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VR을 이용한 ‘사이버섹스’의 장점은 가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아바타와 온라인 섹스를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VR 안경을 쓴 채 콘솔을 조작해서 상대를 쓰다듬거나 애무하는 흉내를 낼 수도 있으며, 남자 혹은 여자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제3자의 입장에서 다른 아바타들의 성관계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다.
가령 가상현실에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VR티티스(VRTitties)’의 경우를 보자. 먼저 사용자는 자신의 캐릭터로 남자 또는 여자를 선택하거나, 흑인 또는 백인을 선택할 수 있다. 남자 아바타를 선택한 경우에는 근육질 정도나 페니스 크기를 설정할 수 있고, 여자 아바타를 선택한 경우에는 가슴 크기나 허리 사이즈 등을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아바타를 설정한 후 가상세계로 들어가면 섹스 파트너인 상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테마 장소는 거실, 침실, 야외 등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마치 실제 눈앞에 서있는 것 같은 파트너가 “준비 됐나요?”라고 말하면 즉시 성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체위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성관계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마치 눈앞에 있는 듯 허공으로 손을 뻗어 가슴을 애무하거나 입술을 만질 수도 있다. 심지어 오럴 섹스도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프로그램의 버튼을 조작해서 상대를 천천히 바닥에 눕히거나 피스톤 운동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상대가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사용자의 손에 달려 있다.
‘알트스페이스VR(AltspaceVR)’은 처음 제작 의도와 달리 가상 현실 속에서 은밀한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경우다. 가상현실 속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 상의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다만 가상현실 속 캐릭터들은 레고 인형을 닮은 형태로 나타나며, 특별한 신체적 특징은 구현되지 않는다.
이곳에 접속한 사람들 가운데는 은밀한 데이트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가령 <포쿠스> 기자는 취재차 들어간 열대섬 테마의 방에서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대여섯 명의 캐릭터들이 야외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포르노 영화를 보고 있던 중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무도 없는 방으로 같이 갈래요?” 그는 포르노 영화를 보니 흥분이 됐다고 말하면서 기자를 유혹했다. 기자는 그의 말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 가상의 섹스를 했다. 하지만 기자는 폰섹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별로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상의 섹스는 머리 속에서만 이론으로 머물렀을 뿐 실제적인 느낌은 없었다는 것이다.
냄새를 맡으면서 섹스를 가상 체험할 수 있는 VR 포르노 기계 ‘오로마’.
장거리 연애 커플을 위한 ‘텔레딜도닉스’도 개발됐다. 이를테면 원격조종이 가능한 바이브레이터다. 가령 네덜란드의 ‘키루(Kiiroo)’사가 개발한 ‘텔레딜도닉스’는 센서를 통해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섹스토이에 자극을 주면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의 섹스토이에 즉각 자극이 전송되고, 실제 성관계를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래의 섹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섹스봇의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섹스봇을 사용할 경우, 포르노 중독에 따른 부작용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베를린의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64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는 주기적으로 포르노물을 본 사람들의 경우, 뇌의 선조체가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왠만한 성적 쾌감이나 흥분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이에 연구진들은 포르노물을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지속적으로 보다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고 결론 지었다.
섹스봇 역시 비슷하다.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의 성연구협회 회장인 피르 브리켄은 “가상 현실은 2D영화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중독의 위험을 높인다”라고 우려했다. 스탠퍼드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자 역시 특히 사춘기 시절에 포르노물이나 비디오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접할 경우, 현실세계에서의 성생활에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포르노물을 많이 접할수록 훗날 발기부전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브리켄은 “로봇과의 섹스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