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탄핵 정국 이후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은 대부분 ‘친박’ 색깔 빼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민봉 의원이다. 박근혜정부에서 국정기획수석을 맡았던 유 의원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친박이라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박근혜정부에서 일했다고 해서 전부 친박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유 의원이 청와대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친박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유 의원은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에서부터 요직을 맡아왔으며 20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공천 받아 당선됐다.
박근혜정부에서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지낸 최연혜 의원 측은 관련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최 의원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자유한국당(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은 이른바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사들이 공천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청와대에서 일하다 비례대표 공천까지 받은 사람이 친박이 아니라고 하니 씁쓸하다. 박 전 대통령은 또 다시 배신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에서 자천타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60여 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박 전 대통령과 선 긋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른바 삼성동계로 불리는 의원 8명을 제외하면 현재 박 전 대통령 곁에 남은 현역 의원은 10명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제 한국당 내에 친박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청산 대상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 있게 친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면서 “친박계라고 하면 친박계라고 욕먹고 아니라고 하면 배신자라고 욕먹는다. 당분간은 우리 의원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는 의원들은 친박계라는 꼬리표를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를 대부분 지웠다”면서 “자꾸 게시물에 악플이 달리고 의원님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문제 삼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친박 핵심인 서청원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지역구는 수도권(경기도 화성)이지만 오히려 지역주민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응원해주신다”면서 “친박계라서 지역구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박근혜 저격수로 변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1년과 대선 후보가 된 2012년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계 3선 이학재 의원은 탄핵 사태 이후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 의원은 “나는 친박이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은 계속 파헤쳐야 한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입’으로 불렸던 이정현 의원도 탄핵 사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는 ‘대통령이 탄핵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탄핵안이 통과되자 지난 1월 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된 이후 별다른 정치행보를 하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이 의원이 친박 내부 권력싸움에서 밀려났다거나, 지역구가 호남이라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 한다는 등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이 의원이 태극기 집회나 박 전 대통령 자택 복귀 때 나타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신들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의원님은 현재 배낭 메고 전국을 돌고 계시다”고 말했다. 여행을 하고 계신 것이냐는 질문에는 “민생탐방 중”이라고 답했다. 의정활동은 중단하신 것이냐는 질문에는 “본회의 등에는 열심히 참석하고 남는 시간에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최근 같은 친박계인 김재원 전 의원을 돕기 위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이 의원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에는 의원실에도 잘 나오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 방문했지만 이 의원실은 보좌진들도 대부분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같은 시간 분주한 다른 의원실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 전 대통령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이 자취를 감춘 것도 뒷말이 나온다. 일각에선 둘이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또 대통령 변호인단의 헌재 탄핵심판 증인출석 요구를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변호인단이었던 서석구 변호사는 “두 사람이 증인출석을 안한 것은 맞지만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박근혜정부에는 장세동이 없다”는 한탄도 들린다. 박 전 대통령 곁에 아직 남아 있는 의원들조차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시절 안기부장을 지냈던 장 씨는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끝까지 전 씨 곁을 지켜 ‘의리의 돌쇠’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한국당 전직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구속까지 됐는데 친박계 의원 중 책임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들 자신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것 같다.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김진태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대선이 끝나고 나면 친박계 의원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당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