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문재인 대선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대선 후보를 상대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파일을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각 당 경선이 마무리된 후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들이 발표되자 정치권은 뒤숭숭하다. 어리둥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경선에서 각각 압도적으로 1등을 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추이가 갈렸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다소 하락한 반면, 안 후보 지지율은 치솟았다. 심지어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서는 결과도 있었다.
두 후보 캠프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문재인 캠프 소속 한 의원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못했다. 왜 그렇게 나왔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수소문 중”이라고 귀띔했다. 안철수 캠프의 한 의원도 “우리도 믿기 힘든 상황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얼마나 실체가 없는지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앞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선거는 문재인-안철수 일대일 구도로 전환하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세론 속에 ‘부자 몸조심’ 스탠스를 취해오던 문 후보 측은 대권 전략 수정에 나섰고, 안 후보 진영은 상승세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이는 곧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대선이 한 달가량 남았고 두 후보의 지지율이 박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네거티브 전략이 주를 이룰 것이다. 네거티브는 로데오 경기와 비슷하다. 흔들다 보면 (지지율은) 떨어진다”면서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어느 쪽이 상대 후보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지가 이번 대선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실제로 경선이 끝난 후 문 후보와 안 후보 간엔 난타전이 오갔다. 안철수 캠프는 문 후보 아들 준용 씨의 특혜 취업 논란에 대대적 공세를 가했다. 안 후보 측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비리를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대선에서 두 번 실패했다”면서 “문 후보는 스스로 아들의 필적을 먼저 공개해 감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도 즉각 응수에 나섰다. 타깃은 이른바 ‘안철수 조폭 연루설’이다. 안 후보가 지난 3월 24일 참석한 행사에서 조폭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의혹이다. 문 후보 측 박광온 공보단장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조폭과도 손잡는 게 안 후보가 얘기하는 ‘미래’인가. 검찰은 국민의당 ‘차떼기’ 동원의 배후를 철저히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상에서도 문 후보 지지자들은 이를 비난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전이 점점 가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벌써부터 ‘아니면 말고’식의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두 캠프는 이를 대비해 대응팀을 꾸렸다. 특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짜 뉴스’에 대해선 별도의 조직을 만든 상태다. SNS 등에 실시간으로 유포되는 의혹들과 상대방 공격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앞서의 문 후보 캠프 소속 한 의원은 “(네거티브 대응팀은) 캠프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클 것이다. 그만큼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사실관계 확인에서부터 법적 대응까지 맡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근 <일요신문>과 만난 청와대 전직 민정수석실 고위 인사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문 후보와 안 후보의 X파일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MB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그는 “2012년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를 놓고 씨름하던 때로 기억한다. 둘과 관련된 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안다. 민정수석실에서 직접 수집한 것과 여러 사정기관에서 올라온 내용들을 참고해 보고서를 만들었다”면서 “둘 중 한 명이 출마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당시 작성된 보고서엔 문 후보와 안 후보 개인은 물론 친인척과 최측근들과 관련된 비리 첩보가 담겨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문 후보 아들 취업 논란과 안 후보 배우자 김미경 교수의 특혜 채용 의혹도 그중 하나다. 또 둘의 과거 경력에 대해서도 샅샅이 훑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 후보 변호사 시절 수임 사건과 안 후보가 경영했던 사업체 등에 대한 자료도 있었던 이유에서다.
이 업무에 관여했던 전직 민정수석실 관계자도 “문재인과 안철수의 개인 및 주변 자료는 물론 여러 풍문들과 비리 의혹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했던 것은 맞다. 대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했었다”라고 털어놨다. 앞서의 민정수석실 전직 고위 인사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로까지 보고가 올라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에 어떻게 활용됐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측이 이를 활용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선거 운동 당시 한 친이계 인사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자료’라며 문재인 파일을 줬었다. 그런데 별로 쓸 만한 내용이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끼리 ‘도와주려면 확실하게 좀 밀어주지’라며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선거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문재인뿐 아니라 안철수 관련 자료도 갖고 있었다더라”라고 말했다. 이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집권당 후보를 밀어주기 위한 모종의 시나리오가 가동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를 접한 야권 인사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사정기관을 동원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정원 댓글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안철수 캠프 관계자 역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사찰이라고 볼 수 있다. 민간인 사찰로 곤욕을 치렀던 정부가 전혀 반성하지 않고 부적절한 일을 진행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2년 만들어졌던 자료들이 대선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단일화 협상을 벌였던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지금 대권을 놓고 ‘치킨게임’에 한창이다. 양측은 네거티브전을 대비해 고급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친이계 인사들은 대선 캠프 곳곳에 포진했다. ‘이번 대선의 키는 MB가 쥐고 있다’는 얘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