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일요신문]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전두환정부 시절 하나회 전횡을 비판해 좌천됐고, 노무현정부에선 군 민주화에 항명하며 대통령과 맞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바로 대선에 출마한 것이다. <일요신문>이 남 전 원장을 만나봤다.
―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다. 대선에 출마한 이유가 따로 있나.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일각에선 내가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지도를 쌓으려고 나왔다는 둥 다양한 소문이 돌더라. 모두 사실이 아니다. 지금 북핵 위기가 심각하다. 안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출마한 것이다.”
― 대선이 끝난 후 정치활동은 전혀 안하겠다는 것인가.
“대선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다. 괜히 출마해 보수표 분산시킨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선은 끝까지 완주할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단일화를 제안해온다면 응할 생각이 있지만 아직까지 바른정당이나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연락 받은 적이 없다. 내가 먼저 그 쪽에 연락해 단일화 하자고 할 생각은 없다.”
― 대선에 출마하려고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고 들었다. 가족들 반대가 심하지 않았나.
“후보 기탁금을 내야 하니까 대출을 진행 중이다. 가족들은 나의 결심을 모두 이해해 줬다.”
― ‘최순실 국정농단을 알았으면 권총 들고 찾아갔을 것’이란 말이 화제가 됐다. 여전히 최순실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인가.
“국정원 정보 수집에 제약이 상당히 많다. 과거 안기부 때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지 국정원이 최순실이라는 개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들여다볼 수가 없다. 최소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인데 내 임기 중에 영장을 발부 받을 수 있을만한 사유가 없었다.”
― 정윤회 문건은 2013년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들어졌다. 국정원장 재직 시절이다. 민정수석실에 국정원 직원도 파견되어 있지 않았나.
“민정수석실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았던 것이지 내게 보고 된 것은 없었다.”
― 정윤회 씨와 관련한 최초 보도는 역시 국정원장 재직 시절이다. 보도를 보고 확인해보라고 지시도 안했나.
“그래서 내가 식물 국정원을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정원 직원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다니면 불법이다. 국정원이 왜 몰랐냐고 하면 법을 어기고 최순실을 사찰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에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정원은 국내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며 지시를 거부해 경질됐다는 것인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소설을 써도 엄청난 소설을 쓴 거다. 왜 그런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 문고리 3인방과 사사건건 부딪혔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 일이 없었다. 문고리 3인방 중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과는 거의 만난 적이 없다. 정호성 전 비서관과는 중국 정책과 관련해서 ‘당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번 말한 적이 있다. 정책에 관한 의견 대립이었을 뿐이다. 사실무근의 보도다.”
― 국정원장으로서 대면보고도 했을텐데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검찰이 정호성 녹취록을 듣고 ‘대통령이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나’ 실망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에 둘러싸여 소통이 안됐다는데 대통령과의 의사소통은 여러 가지 형태로 충분하게 이뤄졌다.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돼 자세하게 할 수 없지만 문제가 없었다.”
― 대선에 출마하면서 종북 척결을 강조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나왔다. 개인적인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이 문제다.”
― 국정원장 재직 시절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했다. 청와대나 정치권으로부터 공개하라는 압박이 있었나.
“그런 요구는 전혀 없었다.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논의를 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도 내 생각에는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공개한 것이다.”
― 노무현 정부 당시 한국 정부에 준 정보가 북한에 흘러들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미국이 대북 핵심 정보를 한국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문제로 한미연합사에서 여러 차례 항의를 했었다. 언론에 보도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
― 임기 중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국보법 위반 사실을 밝혀냈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나.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인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사실여부를 확인해서 당연히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국정원이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든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다. 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는 정치색이 없는 사람이다. 공개된 증거만으로도 통합진보당 해산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 남 전 원장의 후임인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댔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보수단체들과 간담회 정도는 한 적이 있지만 지원금을 지급한 적은 없다. 도대체 그런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 SNS를 통해 ‘유우성 간첩사건은 간첩이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 받은 사건’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내가 직접 올린 것이 아니다. 누가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문제는 통일이 되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증거 조작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인정하고 안 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이미 기소가 됐던 사안이다. 언론에 증거가 조작됐다고 보도가 나온 뒤에야 내용을 알게 됐다. 문제가 된 직원은 이미 검찰에 소환당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각한 안보 불감증이다. 해외에선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저는 40년 동안 국가 안보를 책임졌던 안보 전문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지도자는 저와 같은 안보 전문가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