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와 ‘5·18 사태’라고 썼다. 민주화운동이란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도 실렸다. 또한 폭동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빼앗은 장갑차를 끌고 와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 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되더니 어느 순간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길은 봉쇄된 것 같다.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부정·긍정의 구분을 하지 않듯 폭동도 부정·긍정의 의미를 따질 필요 없이 폭동은 폭동일 뿐이다.”
최근 발매된 ‘전두환 회고록’ 1~3권. 이 책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술하면서 ‘사태’ ‘폭동’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전 씨는 지난해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는 식으로 반응했던 인터뷰 내용을 번복했다. 회고록에는 5·18 당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언급돼 있었다. 줄기차게 북한군의 5·18 개입을 주장한 지만원 박사를 옹호했다. 책은 5·18 당시 광주 현장에 있던 군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들며 다음과 같이 서술됐다.
”’시위대 600명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들을 해방하는 것은 혁명군이 취하는 교과서적인 작전이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미전향 장기수들, 간첩들을 해방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다. 교도소 습격은 북한의 고정간첩 또는 5·18을 전후해 급파된 북한 특수전 요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지만원 박사는 이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 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난 전두환과 노태우 등 5공화국 인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 5·18 때 희생당한 국군 묘지에 참배 한 번 안 온 사람들“이라며 ”아직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다만 언론을 거쳐 대략 내용은 들었는데 돈 받아 먹어 후배 명예 먹칠한 사람이 내 연구를 언급했다는 게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런 반응은 지난해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 내용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당시 전 씨는 5·18 당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북한 특수군 600명이 넘어왔다는 이야기 역시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었다.
전 씨는 5·18 때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1997년 있었던 대법원의 ‘12·12, 5·18 사건’ 확정판결을 거스르는 발언이다. 최근 논란이 된 헬기 사격도 부인했다.
1981년 당시 광주 상공에 떴던 수송 헬기 UH-1H. 연합뉴스
”당시 시위대가 탈취한 무기는 총기가 5400여 정, 탄약 28만 8000발, 폭약 2180t 규모였다. 무장시위대의 공격은 전형적인 특공작전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격 명령이나 자위권 발동지시가 필요하지 않다. 개인적 판단과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상황에서 발포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수대원에게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공수부대의 자위권이 발동됐다는 게 오히려 설득력을 가진다. 헬기 사격 역시 헬리콥터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거나 계엄군의 진압활동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4월 ‘12·12, 5·18 사건’ 확정 판결에서 “광주 재진입 작전명령은 사격을 전제하지 않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실시명령에는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전 전 대통령 등 피고인의 내란목적 살인혐의를 인정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과 자신이 상관 없지만 상처 치유용 ‘제물’이 됐다고 했다. 재조사와 재평가도 요구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한다.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나를 비난하고 모욕 주고 저주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다.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5·18기념재단 측은 재조사를 오히려 환영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피해를 받은 쪽만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이제까지 주장했는데 가해자도 그런 말을 해주니 오히려 고맙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 모두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5·18 유공자인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은 “국가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국민 학살을 자행했던 역사의 죄인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후안무치한 망언을 일삼고 있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5·18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5·18을 비방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정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