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증가에 기업소득이 늘어나고 있지만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올 초 부산항 신항 부두에 접안한 컨테이너선에서 분주하게 화물을 선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수출은 갈수록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감소세였던 수출 물량은 올해 들어 상승세로 전환하면서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수출 금액도 올 3개월 동안 1324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14.9%나 늘었다.
특히 일평균 수출금액은 갈수록 증가세다. 올 1월 18억 7000만 달러였던 일평균 수출 금액은 2월에 19억 6000만 달러, 3월에 20억 4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2015년 5월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고개를 든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 등 커다란 악재에도 수출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가 갑자기 몰아닥친 잇단 태풍 사이를 뚫고 순항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수출 호황으로 한국 경제에 들어오는 돈이 늘어났음에도 내수는 오히려 둔화되는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 2월 소매판매는 전년동월대비 0.5%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9월(0.2%) 이래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도 기준선(100)에 못 미치는 97로 5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돌았다.
이처럼 가계의 소비 심리가 악화되고 내수가 둔화된 것은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가계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낙수효과’는커녕 기업의 배만 부르지 가계에는 도움이 안 되고 있는 셈이다.
2010~2015년 우리나라의 국민총소득(GNI)은 5.3% 증가했는데 이 중 기업소득은 6.3% 늘어나 GNI 증가율을 웃돌았다. 이에 비해 가계소득은 5.2% 늘어나면서 GNI 증가율에 못 미쳤다. 이에 따라 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기업소득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2001년 GNI의 66.5%를 차지했던 가계소득은 2015년에 62.0%로 떨어졌다. 반면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8.8%에서 24.6%로 늘어났다.
선진국에서는 가계소득이 GNI의 80%에 육박한다. 미국은 가계소득이 GNI의 79.8%를 차지했고, 프랑스는 79.1%, 영국은 78.4%, 독일은 75.3%였다. 특히 이들 국가에서 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10%대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9.4%에 불과했고, 미국은 12.0%, 독일 13.8%, 영국 15.5%였다.
올 2월 소매판매는 전년동월대비 0.5% 늘어나는데 그쳤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도 기준선(100)에 못 미치는 97로 5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돌았다. 지난 3월 한산한 명동 거리. 사진=고성준 기자
선진국의 경우 기업의 이익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기업 이익이 가계로 흘러들지 않고 기업에만 머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2.8%를 기록했지만 실질 가계소득증가율은 0.4% 감소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5%) 이래 가장 악화됐다. 가계 소득 감소로 인해 내수가 부진해지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현상도 벌어진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27.4%로 미국(6.6%)이나 독일(11.2%), 일본(11.5%)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2~4배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3%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높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기업 소득이 가계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현재 소비가 둔화되는데 그치지 않고 가계저축률 하락으로 미래 소비 여력까지 악화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우리 경제의 내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이는 다시 기업의 국내 투자 감소와 해외 투자 증가로 이어져 가계 소득이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회에 늘어난 부를 국민 각계각층에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포용적 성장론’을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경제포럼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치권과 기업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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