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4월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위)과 이튿날 올린 사진.
‘홍찍문’은 단순한 신조어가 아니다. 안 후보를 중심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박 대표가 보수층 공략을 위해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4월 5일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19대 대선후보 지지도는 문 후보(41.3%) 안 후보 (34.5%) 홍 후보(9.2%) 순으로 나타났다. 문 후보와 안 후보 격차는 6.8%p로 오차범위(±3.1%p)에 근접한 수준이다.
안 후보 지지율은 보수의 심장부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도 급등했다. 안 후보(36.4%) 문 후보(32.2%) 홍 후보(15.5%) 유승민 후보(6.5%) 순이었다(이번 조사는 5일 전국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10.8%였다).
홍찍문은 문-안 양강 사이에 끼어버린 홍 후보의 처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TK 지역은 반문정서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박 대표가 홍찍문으로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보수층에게 일종의 협박을 하는 셈이다. 문 전 대표가 싫으면 안 후보를 찍으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가 보수층 ‘사표 방지 심리’와 ‘반문정서’를 결합한 홍찍문 전략으로 안 후보 지지층 단속에 나섰다는 뜻이다.
홍찍문에 발끈한 홍 후보는 4월 6일 페이스북에 “박 대표께서 저를 찍으면 문 후보가 된다고 했는데 어이가 없다. 오히려 안 후보를 찍으면 박 대표가 상왕이 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안 후보를 조종하는 분이 박 대표고 안 후보는 박의 각본에 춤추는 인형에 불과하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지사는 이튿날에도 “홍준표의 직썰,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 된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올렸다. 홍 후보가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으로 홍찍문에 응수한 것이다.
홍 지사 최측근은 “안 후보는 보수 우파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안 후보는 위장 보수이자 박 대표 아바타다. 안 후보가 보수우파가 아니란 사실도 홍 후보가 적극 알릴 생각이다. 홍 후보가 지사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이제 올무가 풀렸다. 특유의 화력을 안찍박에 집중시키면 보수 우파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홍 후보와 안 후보 지지층이 겹친다. 반문정서를 지닌 보수층이 안 후보로 결집하고 있다. 박 대표가 홍찍문으로 안 후보를 반문의 선두주자로 규정해 보수층이 안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는 프레임을 짰다. 하지만 안 후보 뒤에는 박 대표가 있다.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박 대표 세상이다. 홍 후보는 계산적이고 영리한 사람이다. 안찍박 전략 역시 장기적으로 안 후보에게 악재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유찍문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하락세를 반영하는 신조어다. 유 후보 측은 ‘유찍문(유승민 찍으면 문재인 된다)’이라는 신조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안철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유찍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리얼미터 4월 5일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 후보(3.0%)는 문 후보(41.3%) 안 후보 (34.5%) 홍 후보(9.2%)의 뒤를 이었다. TK(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유 후보(6.5%)는 안 후보(36.4) 문 후보(32.2) 홍 후보(15.5)에 우위를 내줬다.
국회 관계자는 “유 후보와 바른정당이 공멸 위기를 겪고 있다. 유 후보는 대선에서 15% 이상 득표해서 대선자금이라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구도 자체가 문-안 대결로 굳어진 상황에서 유 후보의 설 자리가 없다.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유찍문 전략으로 보수층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결국 유 후보도 문 후보에 맞설 수 있는 본선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조어다”라고 설명했다.
유찍문에 일격을 당한 바른정당 측은 유찍유(유승민을 찍으면 유승민이 된다)와 문찍김(문재인 찍으면 김정은과 함께한다)으로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지상욱 바른정당 수석 대변인은 4월 9일 “송민순 회고록에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통과 시 북한의 의견을 물어본 후 의사결정을 주도한 사람은 문 후보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죽고 사는 안보 사안에 김정은이 함께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유 후보는 유일한 안보·경제 지도자다. 유승민을 찍으면 유승민이 대통령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문찍김에 대해 ‘색깔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친문 성향의 민주당 보좌관은 “유 후보가 구태의연한 안보팔이를 하고 있다. 종북 프레임으로 문 후보를 가둬놓고 대세론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 후보는 문 후보 안보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문 후보를 빨갱이로 몰아세웠나. 문찍김은 송민순 회고록을 기초로 한 것이다. 종북몰이도 색깔론도 아닌 엄연한 사실이다”라고 반박했다.
안박사(안철수를 찍으면 박근혜가 사면된다)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신조어로 알려졌다. 안 후보가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은 국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사면위원회에서 다루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안박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안 후보 쪽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문모닝과 안모닝 역시 새로 등장한 말이다. 국민의당과 민주당이 각각 문 후보와 안 후보를 공격하는 메시지로 아침 회의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문주주의와 문주공화국은 반문 진영에서 만든 신조어다. 반문 지지자들은 문 후보가 평소 “자신이 민주주의 세력이고 나머지는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이다”라고 주장한 점을 ‘문주주의’라는 신조어로 공격했다. 이들은 심지어 헌법 1조를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문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달님(문후보)으로부터 나온다”며 문주공화국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전문가들은 각 캠프의 신조어 전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신조어 전략은 한국정치 수준이 여전히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책경쟁으로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상대 진영에 흠집을 내서 자신들의 표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국민들은 좋은 경기를 해서 대선 승리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각 진영이 골은 넣지 않고 부정적인 신조어로 할리우드 액션만 하는 꼴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 혐오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