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 됐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법원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에 이어 두 번째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4월 12일 오전 12시 12분께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혐의내용과 관련,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추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이 밝힌 우 전 수석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를 보면, 단 한 가지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우 전 수석을 구속할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 공범이 없다
우 전 수석이 받는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국회 위증죄 등 크게 8가지다. 이 가운데 우 전 수석을 구속할 수 있을 만한 ‘스모킹 건’은 없었고, 따라서 구속 기각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질을 빗겨나갔고, 이 때문에 국정농단 의혹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지적은 우 전 수석의 ‘공범 관계’에서부터 불거진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의혹 관련자 가운데 유일하게 공범이 없다. ‘박근혜-최순실-삼성 커넥션’과 케이스포츠와 미르재단 설립, 블랙리스트, 이대 입시 비리 등은 관련자 대부분이 공범관계가 인정돼 관계자들 각각의 혐의 입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검찰이 청구한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 내용을 보면, 핵심 혐의는 국정농단을 모른 척 묵인하고 방조한 ‘직무유기’와 최순실 씨의 사익 추구와 연결되는 ‘직권남용’이다. 그러나 검찰은 공범 없이 모두 우 전 수석 ‘혼자’ 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누구를 위해, 왜 우 전 수석이 그런 ‘범행’을 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 때문에 ‘최순실 씨는 모르며 민정수석 고유 업무를 했다’는 우 전 수석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했다.
“공범은 따로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검찰 수사만 보더라도, 우 전 수석이 직권남용,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묵인‧방조를 ‘단독’으로 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 전 수석은 민정수석의 업무가 국민여론과 민심동향 파악, 공직·사회기강 관련 업무 보좌 및 감찰 등 광범위하며, 혐의 내용은 모두 고유 업무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고유 업무가 광범위하다는데 그런 업무를 우 전 수석 모두 혼자 할 수 있느냐는 점이 의문”이라며 “그럼에도 이번 검찰 조사에선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현직 검사들이나 검찰 수뇌부 등은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우 전 수석의 공범은 사실상 검찰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는 이어 “우 전 수석 혐의와 그동안 불거진 의혹들의 핵심은 ‘검찰권 사유화’에 있다. 비판적인 세력에 대한 표적 수사나 검찰 인사권 행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나 공무원 인사개입 등은 곁가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우 전 수석보다 조직 지키기”
검찰이 받아든 국정농단 의혹 관련자 수사 가운데 우 전 수석의 수사는 ‘최대 난제’로 꼽혀왔다. 검찰 내부에선 “대통령 수사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우 전 수석은 그동안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면서 검찰 내부에 현재까지도 30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우병우 사단’을 거느리고 있으며 검찰 수뇌부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법조계 관계자는 “법무부와 검찰의 인사는 물론, 감찰까지 모두 민정수석실을 거치게 된다. 우 전 수석이 검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 전 수석과 협력관계인 관계자들도 있겠지만, 감찰 등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던 관계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검찰 입장에선 우 전 수석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라며 “김수남 검찰총장이 수사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지만, 모든 검찰 인력들이 김 총장의 의지를 그대로 따를 수 있겠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우 전 수석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검찰은 ‘우 전 수석 봐주기’가 아닌,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동안 논란이 된 우 전 수석의 수사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8월 23일 우 전 수석 개인 비리 수사를 위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 구성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기본적으로 윤갑근 고검장이 우 전 수석과 사법시험·연수원 동기다. 그런 데다 같은 해 8월 30일 다른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는 가운데 우 전 수석의 자택과 휴대전화는 그 대상에서 뺐고 통화내역조차 확보하지 않아 부실수사 의혹을 키우기 충분했다. 특히 수사팀은 우 전 수석이 경질된 이후인 그해 11월 6일이 돼서야 소환했다. 이날 그가 조사 도중 팔짱을 끼고 검사 앞에서 웃는 사진이 찍혀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후 우 전 수석 사건을 가져간 특검팀도 ‘검찰 조직 지키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를 가장 뒤로 미뤘고, 소환은 특검 수사 종료(2월 28일) 직전인 지난 2월 18일에야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친정’인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수사를 꺼려 우 전 수석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박영수 특검은 “우 전 수석과 관련해 특검 수사 권한 범위가 제한적이었다”면서도 “우 전 수석 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관련 수사를 검찰 특수본 2기에 떠넘긴 이후 시점의 발언일 뿐이었다.
검찰 특수본 2기에 이르러서는 우 전 수석이 지난해 자신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결정적인 시기에 김수남 검찰총장은 물론 당시 특별수사를 총지휘하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와 수차례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부분은 검찰 특수본의 조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지난 4월 12일 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내부 검토를 거쳐 영장 재청구 또는 불구속 기소 가운데 최종 방안을 결정할 전망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