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지난 2월 경영기획그룹 내 미래전략단이라는 지주사 전환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올해 안에 금융지주사로 전환한다는 기존 목표를 접고 전환 시기를 내년으로 늦췄다. 이 행장은 지난 4월 3일 K뱅크 출범 기념식에서 “지주사 전환 신청은 올해 하반기에 가능할 것”이라며 “신청을 하반기에 하면 지주사 전환은 내년 3월이나 6월쯤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금융지주사 전환에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예비인가를 받는 데 60일, 본인가까지 30일, 총 90일가량 소요된다.
우리은행은 조기 대선 이슈로 전환 시기를 늦췄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신청은 우리은행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현재 조선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대선정국 등의 이슈로 당국과 협의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전환 시기가 늦어진 배경에는 대선 이슈뿐 아니라 우리은행 사외이사들의 의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이 행장과 오정식 상임감사위원,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 5명, 최광우 비상임이사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과반 이상을 차지해 사외이사들의 발언권이 막강하다.
우리은행의 A 사외이사는 “일부 사외이사들은 지주사 전환에 대해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의견을 냈다”며 “지금 상태에서 지주사로 전환하면 약 1800억 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세금을 줄이는 방안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B 사외이사는 “지주사 전환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은 같지만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은행 외에도 증권사 등 자회사가 좀 더 있어야 구색이 갖춰지고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우리은행은 인수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전까지는 금융사 M&A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의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사로 전환하려는 가장 큰 목적이 BIS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은) 금융사를 인수하면 BIS자기자본비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지주사로 전환하기 전까지 금융사 M&A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BIS자기자본비율이란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으로, 우리은행이 금융사를 인수하면 해당 금융사의 위험자산까지 떠안게 돼 BIS자기자본비율에 영향이 간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우리은행이 M&A에 나서고 싶어도 나설 타이밍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아직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지분 21% 매각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고 내년에 보호예수 기간이 만료되면 과점주주들이 이탈할 수도 있어 주주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며 “증권사가 최대주주가 된다면 굳이 증권사를 인수할 필요가 없어져 주주 구성이 완전히 정해지기 전까지는 쉽게 M&A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실제 우리은행의 과점주주인 한화생명은 우리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인 ‘우리소다라은행’에서 신용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과점주주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3월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8000억 원 규모의 ‘제2외곽고속도로 포천~화도’ 구간 금융주관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증권사나 보험사를 인수하면 우리은행을 통한 과점주주들의 연계 사업을 피인수된 금융사에 뺏길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주사로 전환한다 해서 과점주주들의 영업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은 지주사 전환 이후에 캐피탈회사나 부동산신탁회사 같은 중소형 금융사들을 우선적으로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당분간은 증권사나 보험사 같은 대형 금융사에 대한 인수 검토는 없다고 밝혀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M&A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지주사 전환 시기를 늦추자고 주장한다. 이 행장이 빠르게 우리은행을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선 사외이사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B 사외이사는 “우리은행이 향후 인수할 금융사가 과점주주와 경쟁 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야 한다”며 “우리은행이 M&A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창구에서 과점주주들의 상품 판매를 지속적으로 할 것을 약속해 과점주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