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2003년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현대카드를 업계 2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지금은 2위 자리를 뺏긴 데다 삼성카드와의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카드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는 카드이용실적을 크게 ‘개인’ ‘법인’ ‘구매전용(기프트카드)’의 3개 영역으로 분류한다. ‘개인’과 ‘법인’은 △신용판매(일시불) △신용판매(할부) △현금서비스 △카드론으로 각각 분류된다. 구매전용 카드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실적이 없다. 국내 신용카드 업계는 신한카드가 절대적 1위이고, 삼성카드와 현대카드가 2위 다툼을 벌이는 구도였다.
2007년 당시 현대카드는 ‘개인 신용판매 2위’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이에 삼성카드는 ‘전체(개인+법인) 신용판매에서는 우리가 2위’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2009년에는 전체 신용판매에서도 삼성카드를 추월해 신한카드에 이어 명실공히 업계 2위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삼성카드는 2012년 다시 업계 2위의 자리를 탈환했으며, 2016년에는 개인 신용판매(일시불)에서도 현대카드를 앞섰다. 사진은 삼성카드 TV광고의 한 장면.
그러나 삼성카드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삼성카드는 법인영업을 강화해 법인 취급고를 늘리며 2012년 다시 업계 2위의 자리를 탈환했으며, 지난해(2016년)에는 개인 신용판매(일시불)에서도 현대카드를 앞섰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삼성카드의 법인 신용판매가 2012년부터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법인 신용판매에서 삼성카드가 현대카드를 근소하게 앞서는 수준이었다. 2009년 법인 신용판매(일시불)를 보면 삼성카드는 5조 7319억 원, 현대카드는 5조 1262억 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삼성카드 29조 7458억 원, 현대카드 11조 3506억 원으로 격차가 2배 이상 크게 벌어졌다. 개인 신용판매는 양사가 근소한 차이를 보이지만, 법인 신용판매가 큰 차이로 벌어지며 전체 신용판매도 삼성카드가 월등하게 앞선다.
업계는 삼성카드의 법인 취급고 증가를 ‘그룹에서 물량을 밀어줬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삼성카드는 “그룹 물량은 미미하다. 법인거래 시 어음·채권 등으로 거래하던 관행을 카드결제로 바꾸면서 그 시장이 새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삼성카드의 법인 신용판매는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23조 4279억 원보다도 앞서는 수치다.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면 모든 카드사가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삼성만 유독 증가세가 가파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삼성 계열사들이 협력업체와의 거래 시 채권·어음 대신 카드결제를 유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물론 삼성카드는 여전히 이를 부인하고 있다.
삼성카드와의 격차가 벌어진 현대카드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현대카드 TV광고. 사진=현대카드
현대카드는 법인영업에서 삼성카드와 경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경쟁사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듯 현대카드 관계자는 ‘삼성카드의 법인 취급고가 늘어난 것이 그룹 물량을 몰아줘서인가’라는 질문에 “기자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법인영업을 강화할 계획은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법인영업은 규모에 비해 이익이 많이 나지 않는다. 법인영업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봐 달라.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삼성카드는 전체 취급고가 늘어나면서 순이익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삼성카드의 순이익은 501억 원, 현대카드는 365억 원이다.
한편 카드 모집비용이 높은 것도 현대카드의 고민거리다. 지난해 카드 모집비용은 신한카드 488억 원, 삼성카드 366억 원, 현대카드 542억 원이었다. ‘카드손익(=카드수익-카드비용)’에서 카드 모집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신한카드는 9.05%, 삼성카드는 7.93%, 현대카드는 15.28%였다. 비율만 보면 현대카드가 삼성카드의 2배에 가까운 모집비용을 들이고 있다.
현대카드는 “타사의 경우 ‘3개월 유지’ 시 카드 모집인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고객이 카드를 장기 유지할 경우 인센티브를 추가로 제공한다. 이는 충성고객을 잘 관리하기 위한 회사의 방침이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단기 실적이 중요하지만, 오너십 베이스에서는 롱런하는 전략을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카드가 업계에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실적이 좋았을 때 정태영 부회장은 ‘마케팅의 귀재’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성장 정체를 맞으면서 존재감이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국내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는 2011년 4.8매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해 지난해 3분기 기준 3.4매로 줄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소비 감소,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대출 규제, 연말정산 소득공제 축소 움직임 등 카드업계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던 정 부회장의 능력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발휘될지 주목된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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