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과 2017년 스트라이크존 비교.
[일요신문] 마운드에 선 투수들의 첫 번째 임무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이다. 초구 스트라이크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투수들은 홈플레이트 위에 설정된 가상의 ‘네모’ 안으로 공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수한 훈련을 반복한다.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냐 볼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결과로 볼카운트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공수 전반이 요동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트라이크가 중요하고, 스트라이크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올 시즌 초반 KBO리그의 중요한 화두도 스트라이크존이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KBO는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하자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 3년 동안 타고투저 현상이 너무 두드러졌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3할 타자가 역대 최다인 40명이나 배출됐고, 20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리그 평균자책점이 5점을 넘었다. 그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첫 번째 대책이 바로 스트라이크존 확대였다.
# 스트라이크존 변경, 처음이 아니다
야구규칙 2.73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베이스 상공을 말한다. 스트라이크 존은 투구를 치려는 타자의 스탠스에 따라 결정된다’고 명시했다. 대략 타자의 팔꿈치에서 겨드랑이 사이가 상한선의 기준이다.
스트라이크존은 그동안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세밀하게 넓어졌다 좁아지기를 반복해왔다. 매 시즌이 끝나면 KBO 기술위원장과 심판진이 회의를 통해 시즌 중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투수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에는 가급적 변화를 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그 해 프로야구 양상에 따라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투고타저가 너무 심하면 스트라이크존을 좁히고, 반대로 타고투저가 심하면 더 넓히는 식이다.
KBO가 처음 공식적으로 스트라이크존에 변화를 준 시기는 1998년이었다. 야구규칙을 개정하면서 존 하한선을 무릎 윗부분에서 무릎 아랫부분으로 변경했다. 1996년부터 바뀐 메이저리그의 변경안을 따라 아래쪽 존을 늘렸다. 그러나 리그 성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경기 평균 득점이 고작 4.42점에서 4.41점으로 0.01점 떨어졌고, 타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투수들의 삼진수가 늘고 볼넷이 줄어든 게 유일한 변화였다. 게다가 변경 2년째인 1999년에는 타고투저 현상이 이전보다 더 심화됐다. 전체 타자들의 홈런수 합계가 당시로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많았던 시즌이었다. 결국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두 번째 변경은 2007년이었다.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친 뒤 “국제대회 규격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스트라이크존을 축소했다. 국내에서 유독 후하게 판정했던 좌우, 특히 바깥쪽 존을 좁히는 게 골자였다. 2006년이 눈에 띄는 투고타저 시즌이기도 했다. 2007년 평균 득점(4.27점)이 2006년(3.95점)보다 높아지면서 두 번째 스트라이크 존 변화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사실 2014년이 끝난 뒤에도 KBO리그는 한 차례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려는 시도를 했다. 2015년부터 상한선을 공 반 개 정도 높이자는 데 뜻을 모았고, 심판들은 동계 합동훈련에서 스트라이크·볼 판정 연습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흐지부지됐다. 2015년 잠시 완화되는 듯했던 타고투저는 불과 1년 만인 2016년 다시 불타올랐다. 결국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다시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나치게 좁은 존이 적용되면서 투수들이 가운데로 몰리는 볼을 던지는 빈도가 늘어났고, 이로 인해 타자들이 큰 덕을 봤다는 것이다.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이런 지적은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볼로 판정되던 코스를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면서 타자들이 혼란을 겪었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심판들도 타고투저 완화를 위해 다시 팔을 걷어 붙였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부터 꾸준히 확대된 존을 적용해 정규시즌을 대비해왔다.
# 2017 스트라이크존 변경의 효과는?
수준급 투수라면 바뀐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투수 출신인 한 야구 해설위원은 “수준급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제구력이 좋다는 것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는 능력을 말하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노련미까지 더해지면 각 심판들의 성향까지 파악해 그날 그 심판이 가장 스트라이크 콜을 잘해주는 코스로 던지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스트라이크존이 확대되든 축소되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당연히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하다. 적정 수준 이상의 제구력을 지닌 투수에게는 희소식이다. 실제로 올 시즌 개막 후 스트라이크존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증언한 선수들이 많다. A 투수는 “낮은 쪽과 높은 쪽의 스트라이크를 많이 잡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투수들에게 유리하다”고 했고, B 타자는 “전체적으로 넓어진 느낌이다. 공 1개씩 정도 더 넓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C 포수는 “좌우는 그대로이고, 상하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진 것 같다”며 “아무래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후해져)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니 볼 배합을 하기 좋다”고 했다.
사실 타자들에게는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반갑지만은 않다. D 타자는 “몸 쪽으로 많이 붙고, 심지어 피하지 않으면 몸에 맞을 만한 공도 스트라이크로 선언된 적이 있다”고 했고, E 타자도 “공이 조금 높다 싶었는데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TV 중계로 다른 경기도 봤는데, 방송 화면의 스트라이크 존 그래픽을 벗어나는 공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더라”고 했다. 그러나 원칙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F 타자는 “심판마다 스트라이크존 성향이 다를 수 있지만, 한 경기에서 구심이 일관된 존을 운영한다면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G 타자는 “오히려 지난해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괜찮다”고 평가했고, H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져 타자들이 불리할 수 있지만, 모든 타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니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는 경기 시간도 단축돼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바뀐 스트라이크존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다. 과거에도 스트라이크존 변화를 겪었던 선수들은 “시즌이 지나면서 점차 전년도와 같은 존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입을 모았다. 야구 전문가들 역시 “당장 존이 바뀐 것보다 앞으로 일관성을 계속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고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는 시즌 중반이 되면 점차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심판들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한다. 일시적으로는 문제점이 완화되는 듯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똑같은 지적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기계적 판정보다 야구다운 야구를” ‘사람과 기계 사이’ S존 판정 실험 뒷얘기 기계는 사람보다 정확하다. 야구도 갈수록 기계의 힘을 빌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된 비디오 판독은 이제 KBO리그에도 완전히 자리 잡았다. 오심 논란으로 리그가 얼룩졌던 2014시즌 후반기부터 ‘심판 합의판정’이라는 이름의 리플레이 판독 제도가 도입됐다. 기존의 홈런·파울 판정 외에도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포스·태그 플레이 때 아웃·세이프,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몸에 맞는 공 등으로 재심 대상이 확대됐다. 올해는 방송사 중계 화면에 의존하던 방식에서도 벗어났다. 아예 메이저리그처럼 서울 상암동에 비디오 판독 센터를 따로 뒀다. 공식 명칭까지 ‘비디오 판독’으로 바꿨다. 판독 대상의 범위도 매년 조금씩 넓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그런 변화 속에서도 단 하나의 판정에 대해선 “심판의 고유 권한으로 남겨 놓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이다. 스트라이크존은 심판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권위로 인정받은 것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2015년 미국 독립리그 산하의 산 라파엘 퍼시픽스 구단이 홈에서 열리는 2경기에 구심 없이 컴퓨터 심판을 내세우는 모험을 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산 라파엘 구단은 그해 7월 29일과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라파엘 앨버트파크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피치(Pitch) F/X’ 시스템으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했다. 피치 F/X는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에 모두 설치된 투구 궤적 추적 프로그램이다. 투구 분석과 방송 중계에 사용된다. 산 라파엘 구단은 메이저리그처럼 카메라 3대를 비롯한 피치 F/X 시스템을 홈구장에 구축한 뒤 판정에 직접 끌어 들였다. 첫 번째 실험은 아니었다. 1970년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에서 로봇 주심이 등장해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한참 전이었다. 로봇 심판은 날씨나 타자의 동작에 따라 여러 차례 오작동을 했다. 오작동을 줄이려면 새로운 공을 개발해야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산 라파엘의 시도는 그 후 첫 사례였다. 실제 경기에서 진행된 방식은 이렇다. 피치 F/X가 구심 대신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면, 오클랜드 외야수 출신인 에릭 반스 심판이 그 결과를 큰 소리로 선수와 팬에게 전달했다. 반스 심판은 컴퓨터 심판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감독이나 선수가 그 판정에 항의하면 기부금으로 1만 달러를 내놓겠다는 공약을 걸기까지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두 번의 경기에선 스트라이크·볼 판정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다. 기술은 날로 진화한다. 피치 F/X는 물론, 미사일 추적 기술을 결합해 야구공을 추적하는 스탯캐스트까지 등장했다. 이 기술들이 사용된 중계 화면을 통해 야구를 보는 팬은 심판의 판정과 기계가 그린 궤적이 다를 때 ‘오심’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제는 비디오 판독에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일본 프로야구도 점점 생각을 바꿔가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오심도 야구의 일부”라는 뜻에서 홈런과 파울 판정에만 리플레이 화면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홈에서의 접전 상황에도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꿨다. 승패나 득점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부터 하나씩 변화를 주고 있는 모양새다. 볼 판정 하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볼카운트가 1스트라이크일 때의 OPS(출루율+장타율)이 1볼일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 때문에 ESPN 칼럼니스트이자 야구통계학자인 댄 짐보스키는 지난해 “심판보다 더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할 수 있는 기술은 이제 갖춰졌다. 앞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더 정확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심판의 볼 판정 실수가 리그 최우수선수를 트리플A 선수로 만들 수도 있다”며 “이런 생각으로 인해 심판들이 불행해지더라도 변화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실험은 여전히 소수 의견일 뿐이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끝까지 사수해야 할 가치라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다. 이미 13개 항목에 비디오 판독을 적용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도 스트라이크존 문제는 철저히 심판의 재량으로 맡겨 놓고 있다. 기계는 정확한 판정을 내리지만, 사람은 야구를 야구답게 만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