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는 11일 “최근 프랑스 검찰은 메르스 바이러스 무단 반입 혐의로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소속 직원 A 박사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파악이 늦었다. 프랑스 검찰이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A 박사 측으로 직접 출석 요구서를 보낸 탓이다.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A 박사는 출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2004년 미래창조과학부의 출연을 받아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 본원이 낸 분원으로 생명공학과 질병 등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A 박사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소속 팀장급 직원이다. 그는 지난해 2015년 10월 11일 대한항공 KE901편을 타고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세포 샘플 3개가 담긴 화장품 용기를 가방 안에 넣고 운반했다. 전자현미경 분석 목적이었다.
전자현미경 16만 배율로 본 세포내 있는 국내 메르스 바이러스. 연합뉴스
이는 규정 위반이다. 프랑스 국립의약품안전청(ANSM)은 병원성 미생물과 독소를 운반할 때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한다. A 박사의 메르스 바이러스 무단 반입 사실은 발생 1년 뒤인 지난해 10월 <코리아타임스>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적극적인 대응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국 보건당국도 진상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10일 질병관리본부는 진상조사단을 연구소로 급파했다. 하지만 진상조사 결과는 별 문제 없다는 결론이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현행 감염병예방법상 위반 사항이 나오지 않았다. 연구소 내부에서 규정을 위반한 사항 정도다. 연구소 자체 징계로 끝냈다”며 “바이러스 샘플을 신고 없이 수입했다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무단 수출은 딱히 처리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취재 결과 A 박사가 진상조사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본원 연구진에게 ‘감염 세포’라고 했던 A 박사는 질병관리본부 진상조사에서 ‘비감염 세포주’로 말을 바꿨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A 박사가 진상조사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은 비활성화 세포주를 가져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는 A 박사가 프랑스 본원 연구진에게 보낸 전자우편 내용과 다르다. 지난 2015년 10월 파리에 도착한 A 박사는 이 샘플 튜브 3개를 본원에 놓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16일 본원 연구진에게 “비활성화한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세포 샘플 3개(3 inactivated Vero cell pellets after infection with environmental samples collected from MERS units)를 본원에 놔뒀다.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해서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해달라”라는 전자우편을 보낸 바 있다.
A 박사는 전자우편에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세포’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그럼에도 진상조사에서는 ‘비감염 세포주’라고 말을 바꿨다. 전자우편을 받아 든 본원 관계자의 전자우편 답장도 이를 바이러스 ‘감염 세포’라는 사실을 정확히 표기했다. 이에 본원 관계자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비활성화됐더라도 미생물 및 독소로 분류된다. 반입하려면 절차가 필요하다. 샘플은 파기됐다”는 답장을 A 박사에게 보냈다.
게다가 A 박사의 사건 이후 행보를 보면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세포 이동에 무게가 실린다. A 박사는 사건 직후인 지난해 1월 4일 ‘공기와 주변환경 등 격리 병동 안에서의 광범위한 메르스 오염’에 관한 연구를 학술지 <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 신청했다. 논문에는 메르스 환자가 있었던 병원의 공기와 메르스 환자가 머문 병실 곳곳을 면봉으로 문질러 채취한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연구했다고 나와 있다. 전자현미경 데이터를 이용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전자현미경 분석은 한국에서도 가능하지만 최고의 기술은 프랑스가 갖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얼치기 진상조사 의혹에 휩싸였다. A 박사가 들고 간 메르스 감염 샘플의 출처조차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부 관계자는 “조사 영역이 아니라 따로 알아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감염 샘플은 국내 이동을 할 때도 방역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아무런 신고 절차 없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이리저리 옮겼다. <중부일보>가 입수한 연구소 내 안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연구소의 한 직원이 지난 2015년 9월 8일 메르스 바이러스를 개인 차량으로 서울아산병원까지 옮겨 분석을 의뢰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분석한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의료원도 제대로 된 절차 없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반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 박사의 논문은 특정 병원 2곳에서 채취한 메르스 바이러스 샘플을 대상으로 작성됐다. 논문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 샘플 채취 병원을 A Hospital과 B Hospital로 표기했다. 따라서 두 병원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A 박사의 메르스 관련 논문에 포함된 의료진이 소속된 병원은 서울아산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등이다.
프랑스 보건당국에서 이 사건을 ‘초유의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 검경이 나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태다. 프랑스 범죄 수사대는 최근 파스퇴르연구소 본사의 관련자 등 10인을 소환해 조사했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A 박사 소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국파스퇴르연구소 홍보팀 관계자는 “2016년 질병관리본부 조사를 반복하는 취재라 답변을 굳이 하지 않겠다. 지난해 배포한 해명자료를 참고하라”고 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이 사건이 보도되자 질병관리본부의 관련 검토가 끝날 때까지 추가 의견 발표를 하지 않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진상조사 뒤에도 연구소의 추가 의견은 없었다.
<일요신문>은 A 박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프랑스 검찰 불출석 사유와 메르스 바이러스의 입수 경로, 메르스 바이러스 제공 병원, 전자현미경 연구처를 물었지만 “모든 사항은 홍보팀과 연락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