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끄는 점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5인 후보 중 ‘강력해진 문재인’과 ‘백만, 천만 배로 강해진 안철수’ 중에서 선출될 것이라고 했다.
4월 1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왼쪽부터)가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양보왕’ 안철수
안철수 후보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독서광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학교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고, 백신프로그램 개발에 흥미를 가지게 돼 무료백신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 덕분에 ‘컴퓨터 백신 의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1995년 안 후보는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프로그램 전문가’의 이중생활을 끝내고, 정식으로 백신프로그램 개발회사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했다. 개인 컴퓨터 이용자에게 무료로 백신을 제공했고, 기업 사용자에게만 비용을 청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철수’라는 이름을 한국사람 모두가 알게 됐다.
안 후보가 정계에 데뷔한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다. 당시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대학교수로 있던 안철수 후보를 부르는 국민요구가 높았다. 그러나 안 후보는 “본인 스스로 아직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다”며 경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지지율이 5%밖에 되지 않았던 박원순 후보는 안 후보 지지에 힘입어 51.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안 후보는 ‘(대세에서) 의연히 양보’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시종 티격태격하는’ 한국 정계에 충격을 줬다.
그 후 안 후보는 18대 대통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선두권을 이뤘다. 그때 안 후보는 또다시 양보를 택했다. 그리고 문재인과의 ‘단일 연대’를 선언하며 최선을 다해 도왔다.
이처럼 ‘양보왕’으로 불리는 안 후보가 국민의당 대표로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려 한다. 4월 4일 안 후보는 경선이 끝난 후 “지금의 저는 이전보다 백만, 천만 배 강해졌습니다. 이번엔 꼭 최후의 승리자가 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 ‘재수생’ 문재인
문재인 후보는 여러 번 “제 강점은 바로 재수”라고 웃으며 말한 바 있다. 문 후보는 이번 두 번째 대선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문 후보는 ‘재수의 달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 입학과 사법고시 모두 재수를 통해 합격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어린 시절 부친 사업으로 생긴 빚 때문에 어렵게 생활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재판을 받고 퇴학당한 뒤 강제로 입대했다. 2011년 문 후보 군 복무시절 사진이 공개돼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에게 문재인은 ‘노무현의 단짝’,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 기억된다.
# ‘검사’ 홍준표
홍 후보는 검사 출신이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1999년 의원 자격이 취소됐다. 홍 후보는 다시 2001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크게 뒤처졌다.
홍 후보는 3월 31일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정해졌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그는 “국민이 박근혜를 용서해야 한다”고 외쳤다. 홍 후보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가 국수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이 약한 정권을 뽑게 된다면, 앞길이 막막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강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외교와 안보 영역에서 홍 후보는 전형적인 우파 세력 대변인이라고 보도한다.
# ‘부전자전’ 유승민
유 후보는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경제 전문가다. 그의 부친은 2선 국회의원이다. 부전자전인 셈이다. 유 후보는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고, 4선 연임했다. 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지만 둘은 여러 의견차를 보였다. 유 후보는 점점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고, 새누리당 비주류로 분류됐다. 결국 유 후보는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유 후보는 “한국의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보자는 저 밖에 없다”라고 자신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전의 보수세력과는 다른 신보수”라고 표방한다. 그러나 사드배치, 개성공단 문제 등에 있어서 유 후보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우파 세력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 ‘인권투사’ 심상정
심 후보는 ‘노동자 인권투사’로 불린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최초의 서울대 여학생회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다. 심 후보는 1980년 노동자로 위장해 구로공단에 잠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했다. 심 후보 주도 하에 구로공단동맹은 1985년 파업을 했고, 이로 인해 심 후보는 10년 가까이 지명 수배됐다. 1993년 유기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2001년 한국정부는 구로공단 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고 관련자 명예를 회복시켰다.
4월 5일 심 후보는 목포대학교 초청 강연에서 “김대중 대통령 통치 시기, 우리의 사회분위기는 일한 만큼 벌자는 것이었다. 힘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불평등현상이 나날이 악화되어 개인의 능력으로 미래를 개척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이 모든 불공평의 일차적 주범은 재벌농단과 기업의 세습경영이다”라고 밝혔다. 외교, 안보 등 영역에서 심 후보는 문 후보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배경화 해외정보작가
신화통신 “한국 차기 정부 출범 100일이 관건” 중국 국영통신사 <신화통신>은 4월 11일 ‘한국대선임박, 시정 100일이 관건’이라는 사설을 통해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에 대해 언급했다. 신화통신은 이번 대선이 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인 데다가 한반도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면서 차기 정부가 당면한 과제들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부가 출범한 시점에서 100일 전후가 시정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부는 출범 100일 동안 개혁추진, 사회통합, 국민과의 소통, 당파 간 협조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왕적 태도가 국민을 대규모 촛불집회로 끌어 들였다고 했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국회와 국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또 특정 정치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당파간의 화합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가 추진하려는 새로운 정책이 반대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효과적인 정책추진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대선 공약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선 예산 확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동안 새로운 정부가 성립되면 대통령인수위원회가 대통령을 도와 정권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다음 정부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새로운 대통령은 취임 후 빠른 시일 내로 주요내각을 임명해야 한다. 인사 문제가 논란이 되지 않도록 대통령은 인사를 추천할 때, 무엇보다 능력을 중시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