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오전 여의도 FKI콘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2017 동아 비지니스 서밋에 참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자리에 앉아 있다. 일요신문 DB.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세론’은 평균 30%가 넘는 압도적인 여론조사 지지도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박근혜 후보는 다른 모든 야권 후보들을 압도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도 17대 대선 직전까지 평균 39~44%의 여론조사 지지도를 보이면서 독주체제를 굳혔다.
‘문재인 대세론’도 여론조사 지지도에 기초해왔다. 그동안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 귀국 이후 각종 여론 조사에서 파죽지세의 모습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에 의하면 1월 1주차에 28.5%를 기록한 문 후보는 3월 5주차(34.9%)까지 13주 동안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문 후보 지지율은 20~30%를 넘나들면서 단계적으로 상승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2월 말만 해도 친문 쪽에선 문 후보 당선을 당연시했다. 청와대 자리를 둘러싼 잡음까지 들릴 정도였다. 막강한 대세론 탓에 캠프 구성원들도 자신감이 넘쳤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천지가 개벽했다. 4월 3일 내일신문 여론조사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내일신문 4월 정례 여론조사 ‘보수-중도 후보 단일화’를 전제한 가상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43.6%)는 문 후보(36.4%)에 7.2%p차로 우위를 보였다. 안 후보가 ‘문재인 대세론’을 무너트린 셈이다(이번 조사는 4월 2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은 13.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문 후보 측은 내일신문 여론조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언론이 문-안 후보 간 가상 양자구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특정 후보를 띄우기 위한 여론조사가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할 위험성을 경계한다”라고 발끈했다. 문 후보 측은 “상식적이지 않다.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보탰다.
하지만 곧이어 문-안 양자대결 구도 신호탄을 알리는 조사 결과가 줄줄이 나왔다. 한국갤럽이 4일 실시한 4월 1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차기 대선 5자구도 지지율은 문 후보(38%), 안 후보(35%), 홍 후보(7%) 유 후보(4%), 심 후보(3%) 순이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쳤다. 한국갤럽을 포함한 각종 여론조사는 ‘안철수 대안론’이 ‘문재인 대세론’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이번 조사는 4월 4~6일 3일간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23%).
이러한 결과를 두고 친문 진영 일각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친문 성향 민주당 보좌관은 “샤이보수 응답률이 높아지면서 안 후보가 치고 올라왔다. 이제라도 문-안 양강 구도를 인정해야 하는데 캠프 쪽에서 여론조사 결과 해석을 자신들 멋대로 하고 있다. 문 후보가 높게 나오면 결과를 인정하고 안 후보가 유리한 쪽으로 나오면 조작이라고 몰아붙인다. 뜬구름만 잡고 있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캠프가 ‘응답률의 함정’을 간파하지 못했다. 대세론에 너무 취해 있었다”고 토로했다.
국회 관계자도 “지금까지 샤이보수들은 여론 조사에 응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마땅히 지지할 만한 후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유했던 표심이 안 후보로 응답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기문-황교안-안희정을 내심 지지했던 샤이보수층이 침묵을 깨고 안 후보로 향하고 있는 구도다. 응답률이 높아질수록 문 후보가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각 정당이 경선후보를 확정한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 응답률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추세다. 리얼미터 2017년 3월 5주차 주중동향(응답률 9.5%)에 따르면 문 후보(35.2%) 안 후보(17.4%) 안희정 지사(12.0%) 순이었다. 2017년 3월 5주차 주간동향(응답률 9.9%)에선 문 후보(34.9%) 안 후보(18.7%) 홍 후보(7.5%) 순이었다. 4월 1주차 주중동향(응답률 10.0%)에서도 안 후보(32%)는 문 후보(43%)를 추격했다. 4월 5일 긴급 여론조사(응답률 10.8%)에서는 안 후보(34.5%)가 문 후보(41.3%)에 바짝 다가섰다. 응답률이 높아질수록 안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3월 5주차 주중동향은 2017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전국 성인 1525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3월 5주차 주간동향은 2017년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255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4월 1주차 주중동향은 4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2533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4월 5일 긴급 여론조사는 1008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선 ARS 방식 여론조사를 너무 많이 한다. 선거 막판이 되면 응답률이 떨어진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다르다. 피로감이 없기 때문에 갈수록 응답률이 올라간다. 최근 여론조사는 안 후보가 보수층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TK(대구·경북) 투표 의지도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 몇 주 전만 해도 TK 어르신들은 대선을 싱거운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샤이 보수들의 응답률이 높아지면서 문-안 양강구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당내에서는 “아넥시트((Ahnexit-안희정 지지층의 이탈)가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들린다. 민주당 관계자는 “반문성향 샤이보수는 처음엔 안 지사를 지지했다. 하지만 경선 뒤 문 후보가 안 지사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과정이 없었다. 안희정 지지자들이 경선 과정에서 느낀 앙금은 여전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 역시 “안 지사의 경선 패배가 확실해질수록 아넥시트가 일어났다. 안 지사를 지지했던 보수층의 숨은 표심은 상당히 강하다. 안 지사가 꼬꾸라지니 곧바로 안 후보로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후보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 측 캠프 관계자는 “허를 찔렸다. 보수층이 안 후보로 결집하고 여론조사 응답률이 올라가면서 문안 구도가 잡혔다. 게다가 안 후보가 통합과 화합의 언어를 쓰면서 보수 후보의 색깔을 강화하고 있다. 문 후보는 편 가르는 언어를 쓰는 데다가 네거티브에 대한 캠프 대응도 엉망이다. 캠프 주축 인원들을 전부 갈아야 한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느낌이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