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제19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보기 위해 모인 지지자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치인펀드는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정치인 펀드는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깨끗한 돈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각광받고 있다. 지지자 결집과 홍보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정치인 펀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다. 당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유시민 전 의원이 펀드를 통해 자금을 모았다. 유 전 의원은 선거에서 졌지만 비용을 보전 받아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줬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요즘 연 3%가 넘는 이자율이 보장되는 정치인 펀드는 매력적이다. 득표율 15%가 넘으면 선거비용이 모두 보전되기 때문에 겉으로 볼 땐 위험성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정치인 펀드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펀드(집합투자)라기보다는 정치자금 공개 차입에 가깝다.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 받기가 힘들다. 만약 정치인이 펀드를 모금한 후 갚지 않아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투자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 금융계 일각에선 정치인 펀드가 유사수신행위에 관한 법률(인가 받지 않고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실제 피해사례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정치인 펀드를 처음 만든 유시민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이 대표로 있던 국민참여당은 지난 2011년 펀드를 모금했는데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면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않아 결국 소송에 휘말렸다.
선거에서 15% 득표에 성공하더라도 원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4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조전혁 후보는 26%를 득표해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았지만 같은 시기에 진행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보전받은 돈이 압류됐다. 조 전 후보는 지난 2010년 국회의원 재직 시절 전교조 명단을 공개했다가 고발당해 전교조 측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가 유력했던 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에도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수 없어 펀드 자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코 안전한 투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정치인 펀드 수익률은 연간으로 환산한 수치다. 실제 거치기간은 3개월 정도로 짧아서 수익률은 1%대에 머문다. 여기에 이자 소득에 대한 이자소득세 25%와 지방소득세 2.5%가 원천 징수되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투자 목적으로 정치인 펀드에 돈을 넣는 분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지지자들이 깨끗한 정치를 하라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주시는 것이다.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좋으니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 펀드와 관련한 부작용도 있다. 펀드 개설 후 모금이 지지부진하면 선거 판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모금을 시작하면 각 조직이 경쟁적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 펀드’로 130억 원을 모금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이번 선거에선 펀드를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안철수 캠프 관계자는 “정치인 펀드가 세 과시, 조직 동원 등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이번에는 모금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정치인 펀드가 검은돈 유입을 차단하고 선거자금 투명성을 높인다는 기존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선거자금의 불투명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인 후원금의 경우 누구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 명단과 모금 내역을 선관위에 보고해야 하지만 정치인 펀드로 모은 자금내역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 선관위에서 따로 감사도 하지 않는다.
정치 후원금은 1인당 1회 500만 원, 1년에 2000만 원을 초과할 수 없지만 정치인 펀드는 투자금액 제한도 없다. 이론상으로는 한 사람이 10억 원을 투자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펀드를 모금한 후 언제까지 돌려줘야 한다는 규정도 따로 없다. 교사와 공무원의 경우 정치후원금은 기부할 수 없지만, 정치인 펀드 투자는 가능하다. 정치인 펀드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총선에서 모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정치인 펀드는 누구로부터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돌려줬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캠프 사람들끼리 ‘이거 뇌물로 10억 정도 받고 나중에 문제 생기면 돈이 없어서 못 돌려줬다고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했었다”면서 “정치인 펀드가 등장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를 감시할 법적 제도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펀드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입금할 때 실명을 쓰지 않고 ‘파이팅’ ‘힘내세요’ 같은 이름으로 입금하는 사례가 많아 상환할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싶어도 실명 공개를 꺼려하는 분들이 있어 쉽지 않다”면서 “얼마를 모금했고 얼마를 상환했다는 것은 후보자 측의 일방적인 발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악용하면 정치인 펀드가 합법적인 뇌물이 오가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도 정치인 펀드와 관련해 “입법적 미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정치인 펀드를 통해 오가는 돈을 감시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면서 “정치인 펀드를 감시할 법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