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몰카 사건은 순수한 마음으로 여자친구를 지지하는 많은 팬들의 공분을 샀지만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자친구가 초심을 잃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굳이 그 남성의 안경 몰카를 지적해서 무안을 줬어야 했느냐는 주장이 요지였다. 이는 명백한 적반하장이다. 예린은 마지막까지 이 남성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이벤트까지 마쳤다. 평소 시선과 같은 선상에 있는 안경 몰카를 통해 딱히 민감한 모습을 촬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누군가가 몰카로 나를 촬영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걸그룹 여자친구 팬사인회 도중 안경 몰카를 쓴 팬이 적발됐다.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이런 몰카만큼 걸그룹 멤버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직캠’이다. 이는 공개 방송이나 공연장을 찾은 팬이 고성능 캠코더나 카메라를 이용해 좋아하는 멤버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영상을 뜻한다. 2년 전 걸그룹 EXID가 ‘위아래’ 활동을 끝낸 상황에서 멤버 하니를 찍은 직캠이 화제를 모으며 일명 ‘역주행 신화’를 쓴 후 직캠은 걸그룹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되는 걸그룹 멤버들은 적잖은 고통을 호소한다. 직캠이 가진 선정성 때문이다.
직캠은 특정 멤버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며 은밀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담곤 한다. 이런 영상은 각종 음란 사이트에서 게재되며 성(性)적인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바로 무대 아래서 노골적인 카메라 앵글로 민감한 부위를 촬영하던 남성 팬을 향해 걸그룹 멤버가 주의를 주는 모습이 포착된 적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오죽 했으면 그렇게 했겠냐”며 “10대 후반~20대 초반 감수성이 예민한 걸그룹 멤버들은 상대방의 시선이나 카메라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히 안다. 자신이 그런 성적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신을 찾아오는 팬들을 비판했다는 역풍을 맞을까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카메라 기타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 또는 공연히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걸그룹 EXID의 ‘이클립스(Eclipse)’ 쇼케이스 현장. 최준필 기자
하지만 이런 법 조항에 의거해 몰카나 직캠을 찍는 이들을 대상으로 법적 대응한다면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아이돌 그룹은 한순간에 미운털이 박힐 수 있기 때문에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걸그룹 멤버들의 또 다른 고민은 과도한 신체 접촉이나 언어폭력이다. 경호 문화가 발달되고 팬들의 의식도 발달됐다고 하지만 신체 접촉을 시도하거나 입에 담기 힘든 말을 건네는 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걸그룹들의 팬서비스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팬미팅을 열고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었지만, 스타와 팬의 ‘일대일 소통’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 스타와 팬이 마주 앉아 간단한 대화와 악수를 나누는 팬사인회와 손바닥을 부딪치는 하이터치회 등 다양한 팬서비스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신체 접촉을 요구하거나 성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속사 관계자들이 빠르게 제지해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 있지만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걸그룹 멤버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은 엄청나다.
중견 걸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는 “악수를 할 때 세게 힘을 주거나 놓아주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라며 “하이터치회를 하다가 와락 안기거나 성희롱과 다름없는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소속사들은 나름의 ‘블랙리스트’를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 블로그에 민감한 사진을 게재하거나 특정 멤버를 대상으로 집착을 보이는 팬들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서 스타들을 만나는 행사 참여를 사전 차단하는 식이다.
스타가 자신이 참여하는 여러 행사에 자주 등장해 반복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팬을 소속사에 얘기하거나, 순수한 팬들이 직접 위험인물을 가려내 제보할 때도 있다.
이 대표는 “음식물을 선물 받았을 때도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먹지 못할 때가 있고, 손에 작은 가방을 들거나 재킷 앞주머니에 펜을 꽂은 팬들이 다가오면 움찔하곤 한다”며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스타들이 대인기피증에 걸려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