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부 군인이 군인권센터에 군 당국의 불법 함정 수사가 있었다고 제보했다.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군인권센터가 밝힌 군 당국의 수사는 음란물을 유출했던 사건의 피의자인 병사에게 평소 알고 지내는 다른 동성애자 군인의 신상을 진술케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때 파악한 군인들 가운데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있는지 수사하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휴대폰 포렌식 방법을 이용해 SNS 대화내용 중 동성애자로 유추되는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고, 군인과 연애를 했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이어나갔다. 수사 대상자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군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도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두 명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내용도 발견됐다. 그렇지만 해당 대화만 봤을 때 이들이 성관계까지 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팀은 동성애자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앱까지 수사에 활용했다. 이들은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기도 했고, 수사 대상인 한 중사에게 앱에 접속해 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이 중사는 수사관이 하라는 대로 앱에서 군인 한 명을 만났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해 얼굴 사진과 소속 부대, 부대 위치, 군인과의 성관계 여부 등을 물었다. 사진을 받아서는 수사관의 휴대폰으로 전송하게 했다.
또한 성관계를 부추기는 대화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앱에서는 일회성 만남을 통한 성관계를 뜻하는 단어로 ‘ㅂㄱ(번개의 자음)’을 통상적으로 쓰는데 수사관이 중사에게 ㅂㄱ이라는 단어를 보내 성관계 제의를 유도하도록 한 것. 상대방 군인은 이를 거절했지만 이미 전송했던 사진으로 신상이 알려져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군인권센터가 수사관이 군인을 수사할 때 녹음된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군인권센터 홈페이지 캡처.
수사관에게 수사를 받은 군인 대다수는 다른 군인과의 성관계 여부에서부터 체위나 콘돔 사용 여부, 성경험 시기까지 심문해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는 문제점도 제기했다. 성관계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수사대상자에게 성관계를 유도함으로써 또 다른 신원을 확보하려고 지시한 것은 함정수사이며 불법 행위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심지어 수사관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 발부하면 불편하지 않겠냐” “너희 부모가 알면 어떻게 되겠냐” 등의 질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군인들은 압수수색이라는 단어에 공포심을 갖고 영장 발부하기 전에 임의로 휴대폰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휴대폰을 제출했다. 제출한 뒤에는 오히려 “이미 포렌식 수사를 했으니 있는 대로 다 말하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또 동성애자라는 성적 지향을 부모님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254조에 따르면 지휘관 등의 적극적인 동성애자 식별활동은 금지된다.
A 대위 역시 음란물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동성애자를 확인하는 방식의 수사로 동성애자임이 드러났다. A 대위의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이 지난 11일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영장을 발부해 압수수색이 이뤄졌는데 자동차까지 무단으로 수색해 블랙박스를 압수했다. 이후 차량에서 압수한 물품은 반환했다.
A 대위의 모친은 “아들이 뉴스의 주인공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나쁜 짓을 한 높은 사람들이나 받는 줄 알았던 구속영장을 받았다니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난다”며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아들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자랑스런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아들을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만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꼭 책임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구속영장청구 기각 탄원 호소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A 대위의 구속영장은 지난 17일 발부됐다.
군인권센터는 “군인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개시했고 통상의 수사방식을 벗어났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게슈타포가 유태계 동성애자를 추적해 체포한 방식과 흡사하다. 수사를 빙자해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있다”며 “동성 간 성관계의 물적 증거도 없이 성 정체성만을 문제 삼아 수사를 진행한 건 반인권적 불법수사”라며 장준규 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또 육참총장과 육군 중앙수사단 수사관 4명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또 센터는 육군 고등검찰부가 일선 부대에 하달했다는 ‘군형법상 추행죄 처리 기준 검토’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지난달 23일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사건이 군 검찰에 송치되기 전의 일이다. 수사 중반에 사건 처리 지침을 만든 것으로 보여 육군참모총장이 미리 계획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문서에는 구속 기소 기준과 불기소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다.
육군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군인권센터에서 주장하는 ‘육군참모총장, 동성애자 군인 색출 및 형사처벌 지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일부 군 법률을 위반한, 잘못을 저지른 군인들이 군인권센터 측에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육군 중앙수사단에서는 SNS상에 현역군인이 동성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관련자들을 식별 후 관련 법령에 의거 형사입건하여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시민단체는 군형법 상 동성애 금지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군인권센터가 함정수사를 주장하던 날 바른군인권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단체들은 “현역 군인이 동성애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복무규정을 위반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