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임기 6개월을 앞두고 잇단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합뉴스
박 행장은 변화하는 금융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해 한국씨티은행을 더욱 성장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이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박 행장은 지난해부터 씨티은행의 각종 조회나 자금이체 등 단순 거래는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오프라인 영업망은 대형 자산관리(WM)센터 중심으로 강화해 왔다. 국내 금융거래의 95%가 비대면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었다. 박 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환경변화에 앞선 영업모델 기반을 완성해야 한다”며 “인터넷,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을 한층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지점 100여 곳을 없앤다는 다소 급진적인 전략은 결국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점 폐지로 사실상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라며 폐점이 예정된 영업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 13일에는 노사가 교섭에 나섰지만 협상이 결렬돼 현재는 노조가 쟁의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해둔 상태다. 조정 결과에 따라 양측 갈등의 수위가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박 행장은 노조와 타협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돌파구는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행장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노조뿐 아니다.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고객정보 유출 사고에 뒤늦게 대응해 해외 계좌에서 고객 모르게 돈이 빠져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고객정보가 유출되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은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사고를 부르고 말았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8일 태국에서 씨티카드 고객 28명의 계좌에서 돈이 인출됐다. 이는 지난달 청호이지캐쉬가 운영하는 자동화기기(ATM) 전산망이 악성 코드에 감염되면서 유출된 개인정보가 악용된 결과다.
당시 해커들은 전산망에 악성 코드를 설치한 뒤 카드정보와 카드 소유자 개인정보, 은행 계좌번호 등을 빼냈다. 이들은 빼낸 2500건의 정보 중 일부로 복제카드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돈을 인출했다.
금융당국은 정보 유출 직후 카드사로부터 명단을 받아 일단 거래정지를 시키고, 고객들에게 연락을 취해 카드를 재발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씨티은행만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씨티은행 측은 고객들이 “현지에서 ATM을 이용하지 못해 더 큰 불편을 겪을 것을 우려해 거래정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씨티은행의 배려(?)와 달리 결국 수십 명의 고객이 피해를 입자 금융당국은 제재에 나설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제재가 필요한 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점차 악화되고 있는 한국씨티은행의 수익성은 박 행장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2016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씨티은행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전년보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시중은행이 같은 기간 1조 원 이상 당기순이익을 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서울 종로 한국씨티은행 본사. 이종현 기자
지난해 씨티은행 영업이익은 2700억 원으로 전년보다 30.68% 줄었다. 다른 시중은행이 영업이익에서 두 자릿수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당기순이익은 2121억 원으로 2015년 2257억 원보다 136억 원(6.02%) 줄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 영업이익은 2015년보다 13% 증가했다. 국민은행 0.79%, 우리은행 16.5%, KEB하나은행 304.9%, IBK기업은행 2.19% 등 다른 시중은행들의 영업이익은 모두 늘어났다. 국내 시중은행이 저금리 장기화, 예대마진 하락, 타업권과 경쟁 심화 등에도 수익을 낸 반면 씨티은행만 영업이익 실적 악화를 기록했다. 2015년의 경우 순이익이 2014년 대비 90% 넘게 늘어난 성과를 냈지만 이 역시 인건비 등의 비용 감소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박 행장은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등을 거쳐 1984년 씨티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1993년 씨티은행 글로벌금융책임자, 1995년 씨티은행 자금담당 본부장 등을 거친 뒤 2000년 삼성증권 운용사업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1년 한미은행 자금운용담당 본부장으로 갔고, 2004년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매각되면서 다시 씨티은행에 합류했으며 그해 수석부행장에 올랐다. 2007년 한국씨티은행 기업금융그룹 그룹장 등을 거쳐 2014년 10월 한국씨티은행 은행장으로 취임했다.
박 행장의 임기는 3년으로, 오는 10월 만료된다. 금융권에서는 박 행장이 연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6개월 뒤면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데, 최근 벌어진 일련의 악재들은 그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박진회 행장과 한국씨티은행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들은 내용도 나쁘지만 시기가 매우 좋지 않다”면서 “연임 결정이 임박한 시점이니만큼 사건사고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내외부를 단속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