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문재인 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일요신문DB
홍준표 후보는 4월 8일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영남지역에서 폭발적인 지지율 상승을 하고 있다. 특히 TK지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여론조사도 다수 있는데도 특정당과 유착된 일부 여론조사기관과 보수언론에서는 저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홍 후보는 연일 SNS에 여론조사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는 글을 게시하면서 승리를 호언 장담했다.
홍 후보 최측근은 “여론조사는 허구다. 역대 선거를 살펴보면 중도를 표방한 사람은 처음에 붕 떴다가 가라앉는다. 17대 대선 당시 문국현 후보가 존재감이 없어진 것처럼 시간이 가면 안 후보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보수 우파들이 결정을 못하고 있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데 안 후보 측이 그 표들을 일시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판 바람이 끝까지 가지 않는다. 그저 출렁일 뿐이다. 보수 우파가 결집하면 홍 후보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4월 12일 재보궐 선거가 끝난 후 홍 후보 측 자신감은 더욱 올라갔다. 선거 결과, 자유한국당이 예상 밖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기초자치단체장 선거구 4곳 가운데 한국당이 2곳,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출신 후보가 1곳 당선됐다. 포천시장 보궐선거에선 4만 5612표 가운데 1만 5285표(33.88%)를 득표한 김종천 한국당 후보가 당선됐다.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는 ‘친박’ 성향 김재원 후보가 승리했다.
홍 후보는 4월 13일 페이스북에 “TK지역에서 한국당에 대한 지지는 완전히 회복됐다. 접전지 포천시장 승리는 우리 당이 국민들에게 최고의 안보정당이라는 것을 확인한 쾌거다. 여론조사와는 달리, 한국당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도가 급속히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강조했다.
홍 후보의 다른 측근 역시 “여론 조사는 예측이지 실측이 아니다. 실측은 직접 투표다. 김재원 의원과 한국당 성향 후보의 총 득표율이 70% 이상 나왔다. 이런 곳에서 문재인 안철수를 찍는 표가 나온다는 것은 억지 논리다. 광주에서 홍 후보가 40%로 득표한다고 하면 믿겠나. 지지율이 높은 사람을 찍는다는 심리가 계속 나오는데 우리는 전혀 신경 안 쓴다. 홍 후보도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침묵하는 ‘샤이’ 한국당 지지자들이 대선에선 홍 후보를 향해 표를 던질 것이란 예측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보궐선거는 대선과 관련이 없다. 홍 후보 자신감이 지나치다’라는 회의론도 팽배하다. 국회 관계자는 “TK 쪽에서 한국당이 선전을 했지만 선거 결과를 뜯어보면 오히려 PK(부산·경남) 지역에선 민주당 바람이 불었다. 경남 김해와 거제 지역에선 민주당 후보들이 압승했다. 한국당이 이겼다고 볼 수 없는 선거였다. TK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는 한국당이 지지를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평했다. 실제로 4·12 재보선에서 PK 지역 10개 지방의원 선거구 가운데 절반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이겼다.
그런데 홍 후보 지지율은 점진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월 17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TV토론 후 5자 구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44.8%)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31.3%), 홍 후보(10.3%) 심상정 정의당 후보(3.5%)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3.2%) 순이었다.
홍 후보 지지율은 2주 연속으로 상승세를 보였고 10일 만에 처음으로 10% 지지율을 회복했다. 문 후보와 안 후보 격차는 10%p 이상 벌어졌다. ‘문-안’구도에 균열이 일고 있는 조짐도 보인다(이번 조사는 2017년 4월 13일부터 14일까지 2일간 전국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9.8%.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문-안 양강 구도가 출렁이는 사이 홍 후보 지지율이 반등을 찍었다. JTBC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5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42%)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4%p 올랐다. 안 후보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6.5%p 하락한 31.8%를 기록했다. 두 후보 격차는 10.2%로 오차범위(±3.1%)를 넘어섰다. 반면, 홍 후보(8.5%) 지지율은 전주대비 2%p 상승했다. (이번 조사는 18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전국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8%포인트, 응답률은 16.9%)
여의도 정가에서는 “홍 후보의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 전략이 주효했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홍 후보는 4월 19일 KBS가 주최한 2017 대선후보 초청토론에서 안 후보 선거포스터 당명삭제 논란과 관련해 “박지원이 그 당의 실세이기 때문에 (박지원 대표 중심의 당 이미지 부각을) 피하려고 한 게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이튿날에도 홍 후보는 “목은 안철수가 맞는데 몸통은 박지원이냐”라고 꼬집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홍 후보는 영리한 사람이다. 안찍박 프레임은 계산적인 전략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안찍박 전략을 쓰면 보수 지지층에선 안 후보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영남권에는 김 전 대통령 햇볕정책에 대한 비토층이 상당하다. 안찍박 때문에 안 후보로 쏠렸던 보수층이 동요했다”고 했다. 홍 후보가 안찍박 전략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당 당내에서는 ‘샤이 홍준표’에 대한 기대감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당 당직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 결정타였다. TK 지역에서 동정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들은 샤이 한국당이자, 샤이 홍준표다.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응답하지 않지만 대선 투표장에 몰려가서 언제든 홍 후보를 찍을 수 있다. 콘크리트 보수층이 홍 후보 쪽으로 지지를 몰아주면 대선에서 15% 이상은 충분히 득표 가능하다”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홍 후보 경쟁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안 양강구도에서 사표 방지 심리는 기본적으로 작동한다. 홍 후보는 대통령 당선에 필수 요건인 중도 보수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다.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인물이란 뜻이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홍 후보의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점쳤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