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회는 A 사에게서 받은 철스크랩 운송 수수료 일부를 ‘보훈성금’ 명목으로 고엽제전우회에 지급했다. A 사는 경우회(경안흥업)와 계약에서 철스크랩 1톤당 10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하기로 약정했다. 계약 기간 현대제철에 납품된 철스크랩 총량은 27만 7000톤이다. 결국 경안흥업은 277만 달러, 한화로 약 30억 원을 번 셈이다. 일요신문 DB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대제철 협력사에서 일감을 받은 경우회는 그간 보수단체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제철 내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관제시위 관계도’에 따르면 구재태 경우회장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로부터 경우회에 일감을 받았다. 경우회는 다시 보수단체인 고엽제전우회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시위(애국안보활동)에 필요한 ‘활동비’를 보조했다. 이 같은 계획이 실행되자 현대제철 내부에선 뒤늦게 특혜 시비가 불거졌고, 경우회에 대한 우회 지원 의혹이 그룹 상부에 보고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현대제철 ‘대외비 감사 문건’ 등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14년 1월 유럽 현대기아차 공장에서 쓰고 남은 철스크랩(고철) 납품을 철강 유통업체인 A 사에 맡겼다. A 사는 같은 달 경우회가 지분 100%를 소유한 경안흥업과 화물 관리 및 해상 운송에 관한 하도급 계약을 맺는다. 계약서에 따르면 경안흥업은 2014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유럽 현대기아차 공장에서 발생한 고철을 국내 현대제철 공장으로 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즉 현대제철이 A 사에 일감을 주고, A 사가 경안흥업에 재하청을 준 것이다.
서울 서초구 헌릉로12 현대자동차 본사. 최준필 기자
실제로 철스크랩 운송 업무를 수행한 곳은 현대글로비스와 G 사, J 사 등 중소 물류업체였다. 현대제철이 A 사에 일감을 주고, A 사가 다시 사업 능력이 없는 경안흥업에 재하청을 주면서 현대제철이 지불해야 할 철스크랩 납품가도 상승했다. 검찰 관계자는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배임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계약으로 현대제철이 A 사에 지급한 대금은 904억 원으로 나타났다.
경우회는 A 사에서 받은 철스크랩 운송 수수료 일부를 ‘보훈성금’ 명목으로 고엽제전우회에 지급했다. A 사는 경우회(경안흥업)와 계약에서 철스크랩 1t당 10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하기로 약정했다. 계약 기간 현대제철에 납품된 철스크랩 총량은 27만 7000t이다. 결국 경안흥업은 277만 달러, 한화로 약 30억 원을 번 셈이다.
구재태 경우회장. 사진제공=재향경우회
그간 경우회는 보수단체를 앞세워 대기업에서 일감을 따내고, 이를 재위탁하는 방법으로 수입을 올렸다. 경우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던 2013~2014년 경우회는 대우조선해양에서 받던 철스크랩 재처리 일감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보수단체를 동원해 고재호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만수 당시 산업은행장 자택 인근에서 항의집회를 벌인 바 있다. 2006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경안흥업이 고철 재처리 사업으로 번 이득은 246억여 원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우회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1월 ‘경우의 날’을 맞아 직접 축전을 보냈고, 경우회와 동업 관계에 있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핵심 실세로 자리했다.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인 SDNJ홀딩스는 경우회와 골프장 운영업체인 삼남개발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경우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경우회는 정부 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주로 회장이 대기업에서 일감을 따내 재원을 충당한다“며 ”현대제철과의 계약도 회장이 직접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협력사인 A 사와 계약이 성사된 2014년 5월 구 회장은 3년 임기의 회장직 연임에 성공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린 지난해 3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앞에서 특조위 청문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현대제철은 2016년 1월 내부 감사를 통해 A 사와 경우회에 대한 일감 제공이 ‘특혜’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지원을 중단한 후 관련 임원을 문책했다. 2009년 설립된 A 사는 현재 현대제철 철스크랩 납품 규모 기준 2위 협력사다. A 사가 현대제철과 철스크랩 납품 계약을 맺은 것도 경우회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2014년이다.
2013년 1640억 원을 기록한 A 사의 매출은 경우회와 거래한 2014년 2440억 원으로 뛰었다. 2015년에도 24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경우회와 계약이 종료된 2016년 매출은 다시 1910억 원으로 줄었다. 유럽 철스크랩 납품 계약 당시에만 매출이 이례적으로 늘었던 셈이다. A 사 임원은 “2016년 영업상의 이유로 유럽 철스크랩 납품을 중단한 것은 맞지만 나머지 내용에 대해선 답할 것이 없다”고 했다.
2016년 7월 경우회는 현대제철로부터 받던 일감이 끊기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자택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했다. 현대차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다른 보수단체도 ‘정몽구 회장의 사진을 태우겠다’는 등 협박해 후원을 받아낸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엽제전우회 서울지부가 경우회의 부탁을 받고 정 회장 자택 앞에 집회신고를 했는데 고엽제전우회 중앙회 쪽에서 ‘우리가 현대차와 협상하는 것이 있는데 그 전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해 시위가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금시초문”이라며 “문건 내용 또한 악의적인 제보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우회는 2016년 고엽제전우회 등과 ‘현대차 규탄 성명’을 준비하면서 “현대제철이 안보활동 지원 명분으로 2014년 고엽제전우회 및 재향경우회, 현대기아차 공장과 고철 운송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아무개 고엽제전우회 서울지부장은 2016년 7월 현대제철로 보낸 내용증명서에서 “경우회(경안흥업)와 A 사 간의 계약은 경우회의 애국안보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사업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협력사인 A 사로부터 고철을 납품받았을 뿐 경안흥업을 지원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A 사와 경안흥업 간의 하도급 계약에 대해서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회사 차원의 보수단체 지원은 결코 없었다. 대기업을 걸고 넘어지려는 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우회 관계자는 “경안흥업은 현재 직원도 없이 휴업 중인 회사”라며 “다른 내용에 대해선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