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송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통해 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가 북한 견해를 물어보자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 제안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은 “기권하기로 결정한 사안을 북한에 ‘통보’만 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송 전 장관이 이번에 공개한 문건은 당시 정부가 확인한 북한 입장을 청와대가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남측이 반(反)공화국 세력들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 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북한 입장이 담겨 있다.
또 문건에는 “만일 남측이 반공화국 인권결의안 채택을 결의하는 경우 10·4 선언 이행에 북남간 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남측이 진심으로 10·4 선언 이행과 북과의 관계발전을 바란다면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남측의 태도를 예의주시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송 전 장관은 자신이 수첩에 기록한 내용이라며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고 적힌 메모도 공개했다. ‘문 실장’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인 문재인 후보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일 경우 북한 입장을 묻지 않았다는 문 후보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문건이 공개되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문 후보가 거짓해명을 한 것이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비열한 색깔론”으로 규정한 뒤 “분명히 말하는데 11월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방침 결정됐다. 북에 통보해주는 차원이었고, 북의 방침에 대해 물어본 바가 없다. 북에 물어볼 이유도 없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후보는 지난 19일 TV토론회에서도 ‘인권결의안 문제를 북한에 물어봤느냐’라는 질문에 “북한에 직접 입장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 정보망이나 휴민트 등을 가동해 북한의 반응을 판단해 보도록 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인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지난 4월 4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관련기사 참고)에서 새로운 주장을 하기도 했다. 김 전 원장은 “당시 북한에 (기권을 통보한 것이 아니라) 찬성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었다”면서 “실제로 찬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이미 기권으로 결정한 후 북한 반응을 떠보기 위해 보냈던 것이다. 당시 북한 반응은 상상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지난해 회고록이 공개된 직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빤한 걸 물어보는 그런 바보가 어딨느냐”고 했었다. <일요신문>과의 이번 인터뷰에서 달라진 입장을 밝힌 것이다.
또 김 전 원장은 “북한에 전할 메시지도 국정원에서 만들었고 전달도 국정원이 했다. 정확한 메시지 내용은 송 전 장관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송 전 장관은 우리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본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송 전 장관이 가지고 있는 문건도 당시 국정원이 보낸 메시지의 답신 성격이라는 얘기다.
문 후보가 TV토론에서 국정원이 해외정보망이나 휴민트를 통해 북한 반응을 알아본 것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 김 전 원장은 ‘남북채널’을 통해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송 전 장관이 북한도 괜찮다고 하는데 왜 당신들이 기권으로 가자고 하느냐고 항의했다. 저는 찬성해도 북한이 괜찮다고 했다는 송 전 장관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만 북한하고 채널 가지고 있느냐. 또 남북 간의 직접 채널도 있다. 그걸 통해서 확인해보자’라고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전 장관은 김 전 원장 주장에 대해 “회고록에 적힌 내용이 진실이다. 그 외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