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이 막을 올렸다. 18대 대선의 개표 의혹을 탐사한 작품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을 맡았고 최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18대 대선 지역선관위 251곳의 개표상황표 1만 4000여 장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지난 대선이 기획 선거였다는 결론이었다. 지난 17일 시사회에서 김어준 총수는 “사람들은 전체 데이터를 안 본다. 날 가리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라고 불신하며 의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자체”라며 “한마디로 줄이자면 지난 대선은 ‘사람이 기획한 선거’”라고 말했다.
영화는 우선 투표지 분류기가 전체 투표지 가운데 3.6%에 해당하는 111만여 장을 미분류로 쏟아냈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미국 등지에서는 보통 미분류표가 1%대에 불과한데 한국은 너무 과하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동일한 조건으로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영화 ‘더 플랜’ 홍보 스틸 컷.
미국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한국에서 사용하는 기계가 다르다. 기계가 투표 용지를 읽는 방식과 기표 방식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OMR 방식이며 한국은 도장 방식이다. 게다가 선관위는 투표 정확성을 높이려 민감도가 높은 방식을 택했다. 기계의 민감도가 높아질수록 정확도는 올라가서 미분류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계의 투표 용지 인식 민감도가 높아지면 ‘분류 보류’로 흘러 나오는 표가 많아진다. 보류는 사람 눈으로 좀 더 정확히 다시 보자는 걸 의미한다”며 “김어준 총수는 계속해서 ‘미분류표’라고 계속 주장하지만 미분류가 아니다. ‘분류 보류표’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독일의 전자투표와 한국의 선거 제도를 비교하며 “독일의 경우 위험성 때문에 전자투표가 위헌 판결 났다”며 “우리도 수개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지난 1999년부터 전자투표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5년 제16대 연방의회 선거 뒤 유권자 일부가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3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전자투표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역시 비교 대상이 달랐다. 독일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투표지가 없으니 조작됐을 때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였다. 전자투표는 유권자가 화면에 나온 후보를 터치하는 방식으로 투표한다. 이는 한국이 사용하는 투표지 분류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투표 용지에 유권자가 직접 도장을 찍는다. 게다가 선관위는 개표 뒤에도 표를 전량 보관토록 규정돼 있다. 재검표가 가능하다. 동일하지 않은 조건을 서로 비교해서 현재 한국의 개표 체계를 비판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투표지 분류기는 조작이 쉬워 기획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실험이었다. 선관위가 사용하는 기계라며 구해온 기계로 조작 실험을 시도했다. 해커를 거쳐 설계한 조작 데이터로 투표지 분류를 시도했다. 조작된 실험 결과가 나왔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실험 참가자의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다. 조작을 기획했으니 조작된 데이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제작진이 간과한 사실은 실험에 사용된 기계와 선관위가 사용하는 기계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영화에서 나온 기계와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는 완전 다르다”고 했다. 반면 영화는 99.99% 같다고 주장한다.
만약 같은 기계를 썼더라도 실험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통계 전문가는 “영화는 내내 미분류표 3.6%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됐다는 식으로 관객을 몰아갔다. 그렇다면 정말 같은 기계를 쓰더라도 3.6%에 근접한 미분류표가 나오는지에 대해 검증해야 했다. 같은 기계에 1만 표 정도 넣고 돌려도 됐을 일이다. 결과값에서 미분류표 비율이 3.6%와 동떨어지면 누구든 문제가 있다고 느낄 것”이라며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지 않고 조작을 기획한 뒤 ‘조작이 쉽더라’로 ‘지난 대선은 조작됐을 거다’란 결론을 내리는 건 무논리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영화는 선관위가 공식 개표 결과를 공표하기 전에 어떻게 방송사에서 득표율을 방송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방송국을 비롯한 언론사 기자들은 전국 개표소에서 개표 내내 대기하며 직접 투표지 분류기의 수치를 확인해 득표율을 보도한다. 물론 이 수치는 수검표를 거치기 전의 득표율로 선관위의 공식 공표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오차 범위 이내다. 게다가 18대 대선 개표소 251곳에 투입된 투표 참관인은 4532명이었다. 거대한 조직이 4532명을 다 포섭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 말미에는 선관위가 취재를 거부했다는 캡션이 나온다. 하지만 선관위는 취재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는 “중앙선관위는 우리의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했다”는 말과 함께 종료됐다. 이에 선관위 관계자는 “<더 플랜> 제작팀에서 공식적으로 취재를 요청한 바 없다. 만약 있었다면 대변인실이나 공보실에서 충분히 대응했을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더 플랜> 관계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서 연락처를 받았다. 계속 연락하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회신 받지 못했다”며 “누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지 밝히기는 조심스럽다. 공개할 수 없는 이유는 선관위와의 인터뷰보다 <더 플랜>이 숫자로 입증한 내용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 측은 “담당 부서 정도 소개했을 뿐이다. 제작팀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공공기관의 대변인실이나 공보실 등은 취재를 지원하려고 있는 부서다. <일요신문>은 <더 플랜> 관계자에게 송영길 의원이 알려준 부서 말고 선관위의 취재 지원 부서에 요청을 한 적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더 플랜> 관계자는 “사안에 가장 적합한 담당자 연락처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팀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선관위는 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개표부정 의혹 영화 <더 플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발표문은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의 직접 검증이다. 선관위는 제19대 대선 종료 후 <더 플랜> 제작팀의 요구가 있다면 응하겠다”며 “검증 결과 대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