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에서는 이미 지난해 ‘바둑춘향 선발대회’가 열린 바 있다. 당시에도 그동안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승상금 500만 원을 내걸어 ‘파격적’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올해는 그것을 뛰어 넘는 대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아마추어 바둑대회에서는 남자부 전국대회에서 간간이 1000만 원을 내건 바둑대회가 있었을 뿐인데 이번에 대형 여자기전이 탄생했다.
오인섭 전북바둑협회장
인터넷 바둑 3단 기력의 오인섭 회장이 바둑을 후원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부터. “남원 지역 조그만 바둑대회를 후원하면서 돈을 잘 썼구나,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친김에 남원은 물론 전북바둑협회장까지 맡았다.
그가 운영하는 (주)아시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금속재 울타리와 용접 철망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직원은 약 120명 정도. 지난해 350억 정도의 매출을 올렸고 현재 국내 펜스 시장 점유율 20퍼센트로 전국 1위라고 한다. 그런데 바둑과는 전혀 동떨어진 분야처럼 보이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굳이 바둑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바둑은 어릴 적 부친에게서 배워 40년을 두었지만 기력은 인터넷바둑 3~4단 정도입니다. 요즘은 시간이 나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을 기회가 별로 없지만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가끔 접속합니다. 예전엔 지면 분하니까 책도 사서 보게 되고 기보도 제법 놓아보았습니다. 아마고수 장시영 씨가 남원에 들렀을 때 한 달 정도 배운 적도 있습니다.”
그가 전북바둑협회를 맡은 이후 전북에는 기존 이창호배 전국아마바둑대회와 도지사배, 전주시장배 외에도 놀부배, 김제 지평선바둑대회, 정읍 단풍미인배, 익산 서동배, 전주 한옥마을배, 아시아펜스배 등 전국 및 지역바둑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모두 그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으면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여기에 ‘2017내셔널바둑리그’엔 전북 아시아펜스 팀을 창단해 참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후원자와 바둑팬을 동시에 자부하는 그가 무턱대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후원하는 것은 아니다.
“저희는 성장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홍보가 필요합니다. 마침 바둑과 인연이 닿았고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둑과 울타리 펜스 사업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둑이 매개가 되어 여기저기 알려지게 됐고 자체 분석 결과 홍보 효과도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통 홍보효과는 3년 후를 내다보고 하는 것인데 오히려 바둑 때문에 앞당겨진 면이 있죠.”
오인섭 전북바둑협회장이 지원하는 전북 아시아펜스 팀은 2017내셔널바둑리그 1~2라운드를 모두 5-0으로 장식, 막강 화력을 뽐냈다.
물론 홍보효과가 전부는 아니다. “바둑춘향 선발대회를 창설한 것은 첫째 과거 전북이 한국 바둑의 메카였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보듯 최고의 두뇌 스포츠라는 점도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싶었지요”라고 말하면서 “앞으로는 한중 대회와 같은 국제대회도 준비해 중국인들도 전북 바둑의 명성과 위상을 실감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오 회장의 이 같은 포부는 ‘한국 현대바둑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남철 국수와 불세출의 기사 이창호 9단 등 과거 한국 바둑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바둑 명인들이 전북 출신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2017 국제 바둑춘향 선발대회’ 이야기로 돌아간다. 2박 3일간 열리는 대회는 한국에서 8명의 여자바둑 상위랭커와 중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8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국제 아마추어 여자바둑대회는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과연 중국과 일본 등에서 어떤 선수들이 참가할지 관심거리다. 물론 부대행사로 각종 여자바둑대회도 함께 열린다.
현재 국내 프로기전 중 여자들만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프로 여류국수전과 여류명인전뿐이다. 1년에 한 번 여러 차례 예선과 본선을 거치는 이들 대회의 우승상금은 1200만 원. 그에 비하면 2박 3일 동안 열리는 대회에 1000만 원(준우승 500만 원, 3위 300만 원, 4위 200만 원)의 우승상금이라면 오히려 아마추어 대회가 더 클 수도 있겠다.
오 회장은 “바둑은 분명 재미있고 오래된 문화이자 예술인데 사회적으로 저평가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회 규모를 키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보는 것이지요. 흔히 아마추어가 무슨 돈 타령이냐 하는데 잘못된 인식입니다. 돈이 들어가야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야 시장 규모도 커질 테고요. 아마대회가 커지면 당연히 프로대회는 더 커집니다. 아마가 이만큼 받는데 프로가 그보다 적게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돈이 들어가면 결국 격조와 품격도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바둑인들이 이런 점에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