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왼쪽)·안철수 후보 TV 광고 캡처.
2002년 노무현 캠프가 공개한 TV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상 속에서 기타를 치며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를 불렀다. 셔츠 소매를 걷고 담담한 표정으로 가사를 읊는 노 전 대통령 모습은 유권자 마음을 훔쳤다. 노 후보의 또 다른 TV 광고 테마는 ‘눈물’이었다.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성우 목소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이 흘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은 표심을 얻기 위한 TV 광고를 쏟아냈다. 4월 19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첫 TV 광고를 공개했다. 가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에 삽입된 기타소리와 광화문 촛불집회 사진으로 시작하는 광고는 “당신이 꿈꾸는 대한민국 문재인이 이루겠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데려다주는 부모, 면접을 보는 청년, 소방 공무원, 골목상권 상인 등이 차례로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광고 시간 1분 동안 문 후보 모습이 몇 초 정도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광고 기획에 참여한 한영애 민주당 홍보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광고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힘들게 견뎌주신 국민들은 결국 촛불을 들었다. 그분들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평범한 시민들이 1차 광고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문 후보가 이들이 일상에서 발견한 희망을 모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TV 광고 콘셉트는 ‘파격’이다. 안 후보 측은 ‘모션 타이포(Motion Typo)’ 기법이라는 히든 카드를 선보였다. 이는 빠른 텍스트 나열과 반복적인 화면 전환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다. 안 후보는 광고 영상에서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북소리와 함께 ‘벤처기업가에서 교수’ ‘정치인 대통령 후보’, ‘역전의 명수! 강철수’ 등 녹색 글자로 된 메시지가 흰 바탕에 끊임없이 나온다. 영상 마지막에 “미래를 여는 첫 번째 대통령”이라고 외치는 안 후보 목소리가 들릴 뿐이다.
안 후보 1차 광고를 기획한 주인공은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로 알려졌다. 안 후보 측 정기남 홍보부본부장은 21일 광고를 시연한 뒤 “이 대표가 전체적 방향을 결정하고 콘셉트를 정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각종 국제 광고제에서 29개 메달을 휩쓴 광고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대표는 안 후보가 두 팔을 들어올린 채 ‘V’자를 형상화한 선거 벽보 디자인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후보 벽보 사진은 몸과 얼굴을 합성한 기법이 적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미지 전문가들은 안 후보 TV 광고에 관심을 보였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안 후보 광고를 보고 하나의 작품을 감상한 느낌을 받았다. 개성이 넘치고 역동적이고 함축적인 메시지를 광고에 입혔다. 문 후보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른 점이 인상 깊었다. ‘행복의 나라로’라는 노래 가사와 어울리면서 문 후보의 안정감 있는 이미지가 더욱 부각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대선 후보들이 해오던 방식을 차용했기 때문에 다소 진부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위부터 차례대로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 TV 광고 캡처.
자유한국당 홍보국 관계자는 “개구리 장면은 위기 상황의 징조를 뜻한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자’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상황을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취지다. 위기 상황에서 홍 후보 같은 강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겁고 엄중한 느낌을 가미했다. 광고는 워낙 중요하다. 1차 광고를 공개한 뒤 여론조사로 반응을 살펴볼 계획이었지만 대선 기간이 너무 짧아 여건이 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유승민 바른 정당 후보 TV 광고는 메시지 강조에 공을 들였다. 광고 영상은 책이 수북이 쌓인 책꽂이가 배경이다. 책꽂이 앞에서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유 후보가 “저는 공화라는 어려운 표현을 한 번씩 씁니다만…공화는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가면서 잘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죽는 것은 공화국이 아니죠”라고 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공화’의 가치를 설명하는 유 후보를 여러 각도에서 비춘다. 광고 영상 속에서 모습을 비추지 않은 안 후보와 대비적인 모습이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유 후보 광고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학자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너무 무겁고 심각한 이미지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유 후보가 입은 터틀넥은 계절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짙은 회색이라서 밝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홍 후보 광고는 신선하다. 말 바꾸는 사람은 ‘문재인’, 유약한 사람은 ‘안철수’를 뜻하는 것 같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무거운 느낌이지만 홍 후보의 강인한 색채와 잘 어울리는 영상이다”라고 평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출발이 다르다’ TV 광고도 이목을 끈다. 광고 첫 장면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육상 트랙에서 달리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 속에서 한 남성은 골인 지점에서 결승 테이프를 끊는 남성을 뒤에서 바라본다. “백번을 다시 뛰어도 이길 수가 없는 경기”라는 자막과 함께 ‘되감기’ 영상이 이어진다. 반전은 뒤로 달리는 두 남자가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달리기가 끝난 뒤 등장한 심 후보가 “시작부터 불공정한 룰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박원석 정의당 공보단장은 “불평등 해소는 심 후보 주요 공약이다. 도착점에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콘셉트다. ‘흙수처’ 청년들은 뒤에서, ‘금수저’ 청년들은 앞에서 출발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불평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도착지는 같을지언정 공정한 출발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